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이한열이 친구 상현에게 쓴 두 번째 편지를 소개합니다. 1985년 5월 1일입니다.
“지난 토요일 그렇지 않아도 서울 운동장에 갔었다. 비록 승리는 못했어도 모처럼 교가를 부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더구나. 여러 선배들도 만나고 특히 후배들이 700여 명 올라왔더구나. 교감 선생님도 만나뵈었다. 잠자리도 날아왔더구나. 손XX 선생님은 지척에서 뵙고도 인사드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이 재수생에게 남은 일말에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 (중략) 한 걸음 한 걸음에 자기발의 치수와 걸음걸음 사이 즉 보폭이 일정한 값을 가지며 속도와 가속도를 내는 공식을 알아야 할 것이랴. F=ma 라는 것에 유념하여 m은 항상 일정한 값을 지니며 a에 의해 F는 대부분 결정됨을 알아야 할 것이랴. 우리가 전에 씨부렁거리던 말들이 오늘에 와 이런 기다란 인연의 줄을 맺어줌을 알거늘. 이제 또한 우리가 지금 전하는 마음이 또 나중에 우리가 씨부렁거려야 할 말들의 인연임을 알거늘. 상현, 이제 우리는 출발하자.”
그 시절 진흥고 야구부는 고교야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1985년엔 준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강팀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있었던 시합에 이한열도 모교 응원차 관람했습니다. 야구장에서 만난 모교 선후배와 선생님들을 만나 반가웠지만, 재수생이라는 죄책감에 선생님께 인사를 못 했다는 대목에선 이한열의 착한 심성이 보입니다. 또 이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 수 있네요. 고교생도 아니지만 대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재수생 이한열의 시간은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뉴턴의 운동법칙을 비유삼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로 다짐합니다. 이제 어둠의 터널에서 나와 목표를 향해 속도를 내는 이한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학예사 장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