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325-7216
평일 10시~17시


상설전시

이한열열사의 꿈을 담고 있는 이한열 기념관에는 최병수 작가의 <꿈> 솟대가 옥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화단 담벼락에는 김야천 작가의 벽화가, 전시실 입구에는 이경복 작가의 모자이크 벽화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전시장 3층과 4층을 이어주는 벽면에는 장례식 행렬을 이끌었던 영정그림이 있으며, 4층 상설 전시장에는 그가 쓰러질 때 입었던 옷과 신발,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태원 기자(로이터 통신)가 포착한 피격 장면 사진과 그를 감쌌던 연세대 화학공학과 학생회 깃발도 소중한 유물로 기념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깃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피 흘리며 쓰러질 때 그를 감쌌던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깃발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015년 8월 연세대 공과대학 건물 리모델링을 앞두고 창고에서 발견되어 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이후 전문 기관에 의뢰,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나서 2016년부터 이한열기념관에 전시중입니다.

이한열 열사가 쓰러질 때 입고 있던 옷과 신발

이 옷과 신발에는 화학공학과 깃발과 마찬가지로 상처에서 흐른 피가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한열의 둘째 누나가 잦은 이사 중에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2005년 이한열기념관이 개관되었을 때 기증해주셨는데 신발은 오른쪽만 남아있습니다. 이후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의류를,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가 운동화를 복원해주셨고, 시민 성금으로 수장고와 진열장이 마련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열사의 몸에 닿았던 옷과 신발 외에도 안경과 사망원인을 분석한 부검결과지도 함게 전시 중입니다.

솟대

건물 옥상에 솟대 하나가 위치해 있습니다. 솟대는 인간의 뜻을 새를 통해 신에게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솟대의 새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이 ‘꿈’이며 이한열 기념관은 이한열 열사의 꿈을 담고 있는 곳이기에 솟대를 제작 배치 한 것입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해가 저물어 날이 지면 그 꿈이 희미해지지만 꿈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상에 솟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장미

열사의 장례식 영정그림 배경으로 쓰인 것이 구름다리입니다. 최루탄 가스를 상징하는 이 구름다리를 장미가 타고 올라갑니다. 한열이 최루탄에 맞은 6월 9일부터 숨이 멎은 7월 5일까지 한 달 동안 연세대 담벼락에 흐드러지게 피어 모든 싸움을 지켜보았던 꽃이 바로 장미입니다. 그 싸움의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장미를 꺾어 전경의 투구에 꽂아주었습니다. ‘전경도 시대의 피해자들이지, 가해자인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담아 그 투구에 꽂아 준 꽃입니다.

모자이크 벽화

전시실 입구에 붙은 모자이크는 민주주의라는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이한열 열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싹조차 보이지 않던 천장 부분에서부터 꾸준히 물을 주고 가꾸어 벽면 아랫부분에 와서는 전경들의 방패와 투구에서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경을 뚫고 나와서 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층 화단 벽화

2012년 기념관 옆 건물이 증축되면서 기념관 옆으로 작은 담벼락이 생겼습니다. 지나던 길에 시멘트벽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야천 화가(본명 김성호)가 자원해 벽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야천 작가는 87년 당시 홍익대 미대생으로 열사의 영정 작업을 함께 한 인연이 있습니다. 벽화에 남긴 선생의 글로 설명을 갈음합니다.
‘여전한 스무 살 친구!/ 한열이를 그립니다./ 우리들 가슴속 서늘한 기억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부활하지 않는 한/ 유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