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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

이한열열사의 꿈을 담고 있는 이한열 기념관에는 최병수 작가의 <꿈> 솟대가 옥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화단 담벼락에는 김야천 작가의 벽화가, 전시실 입구에는 이경복 작가의 모자이크 벽화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전시장 3층과 4층을 이어주는 벽면에는 장례식 행렬을 이끌었던 영정그림이 있으며, 4층 상설 전시장에는 그가 쓰러질 때 입었던 옷과 신발,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한열 연혁, 정태원 기자(로이터 통신)가 포착한 피격 장면 사진, 중고등학교 시절 유품과 글, 유월항쟁 기록물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한열이 쓰러질 때 입고 있던 티셔츠와 청바지

이 옷에는 그가 쓰러질 때 흘린 피가 남아있습니다. 이한열의 둘째 누나가 보관하고 있다가 2005년 이한열기념관 개관 때 기증해주셨습니다. 2013년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 처리를 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 열사가 썼던 안경, 사망원인을 분석한 부검결과지도 함께 전시 중입니다.

한 짝만 남은 운동화

이한열이 쓰러진 뒤 세브란스로 옮겨질 때 떨어진 운동화입니다. 한 여학생이 ‘깨어나 집에 가려면 운동화가 있어야지.’ 생각하여 들고 응급실로 따라 갔습니다. 그의 상태는 위중했고, 밤이 되자 광주에서 가족이 오셨습니다. 차마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고 밤을 새운 뒤 새벽에 가족에게 운동화를 맡기고 돌아섰습니다. 세월의 풍파로 바닥이 절반이나 부서진 것을 미술품 복원가인 김겸 박사가 복원해주셨습니다.

솟대

건물 옥상에 솟대가 있습니다. 솟대는 새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인간의 바람을 천상에 있는 신에게 전하는 존재가 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솟대의 새처럼 현실과 이상을 연결해주는 것이 ‘꿈’입니다. 이한열기념관에서 이한열의 꿈, 이곳에 오신 분의 꿈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날이 저물면 꿈 솟대가 보이지 않지만 꿈 솟대는 항상 그 자리에 있듯이, 상황이 어려워져도 꿈을 가꾸어 가자는 의미로 옥상에 솟대를 세웠습니다.

장미

이한열 영정 그림 배경에는 구름 문양이 있습니다. 최루탄 가스를 상징하는 구름 모양 지지대를 장미가 타고 올라갑니다.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은 6월 9일부터 숨이 멎은 7월 5일까지 한 달 동안 연세대 담벼락에 흐드러지게 피어 모든 싸움을 지켜보았던 꽃이 바로 장미입니다. 그 중 어느 날, 누군가가 장미를 꺾어 전경 투구에 꽂아주었습니다. 전경도 시대의 피해자들이지, 가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모자이크 벽화

전시실 입구 모자이크 작품은 민주주의라는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이한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 윗부분에서 민주주의의 어린싹은 전경의 투구나 방패를 뚫고 나옵니다. 그 싹에 희생이라는 물을 주고 잘 가꾸면 풍성한 꽃이 피어나게 되지요. 민주주의라는 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폭압을 뚫고 나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층 화단 벽화

2012년 이한열기념관 옆 건물이 증축되면서 기념관 옆으로 낮은 담장이 생겼습니다. 시멘트벽이 그대로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야천 화가(본명 김성호)가 자원해 벽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야천 작가는 87년 당시 홍익대 미대생으로 이한열의 영정 그림 작업을 함께 한 인연이 있습니다. 벽화에 남긴 선생의 글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여전한 스무 살 친구!/ 한열이를 그립니다./ 우리들 가슴속 서늘한 기억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부활하지 않는 한/ 유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