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씨앗이 광야를 불사르다
모진 세상사는 건 누구의 죄요.
아니요
이건 죄도 보상도 아니요.
모진 세상사는 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바로 당신이 살고 있는 거요.
미치도록 이 세상을 살고 싶소.
조각조각 내 몸과 내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그 누군가 나의 조각을 딛고,
이 세상을, 이 더러운 진흙땅을
살아간다면,
그저 내 이름 나만이 간직하는 걸로 만족하겠소.
하나, 울화가 치밀어 눈 감을 수 없다면,
그 누군가 편히 눈감고 낮잠을 청할 수 있다면,
난, 그가 더 빨리 썩을 수 있다는 걸로 만족하겠소.
나의 씨앗이 광야를 불사를 수 없어도 좋소.
어차피 그건 관념의 광야이므로.
이 세상 내 눈이 받아들인 나의 한계이므로.
그러나,
내 오직 나의 한 욕심은
부디 썩을 수 있는, 방부제로 물들여지지 않은
어머니의 투박한 청국장처럼
그렇게 순진한 내 몸과 내 마음을
갖는 것 뿐이오.
그게 전부이외다.
1986.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