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남
만남에 대해 쓰고자 한다.
우연이라고 여겨지는 만남이 곰곰이 되씹어보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종종 깨닫곤 한다. 또한 한 번의 만남은 단순히 가벼운 인사말이나 버스가 옴으로 해서 급작스럽게 중단될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먼 훗날-가까운 시간이라도 좋다- 만남, 재회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시간적 경과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오늘 아침 뜻밖의 국어담당 양 강사와의 만남은 우수의 거리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신촌거리의 짧음을 새삼 느끼게 했다. 그는 3월 첫 강의시간에 우리와의 우연한 만남을 강조했으며, 며칠 전 종강 시간에는 필연적 만남으로 규정지음으로 해서 마지막 국어시간을 함축성 있게 느끼도록 나를 유도했다.
그러했던 그와의 뜻밖의 재회가 나에게 만남이란 단어에 집착케 하기에는 충분했다. 또한 첫 기말고사 시험이 국어였으니, 이러한 상황은 나를 어쩔 수 없이 펜을 들게 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여러 만남을 경험했고, 거기서 상대방에게 나의 모습이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생이 만남으로 연속된다는, 다시 말해서 ‘인생은 만남 그 자체다’라고 규정짓는다 해서 아무런 하자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담뱃불을 빌리고자 하는 단순한 접촉에서부터 하룻밤 잔을 들이키며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만남에까지 하나하나가 자기의 모습이며 자기발전의 길임에랴.
영구히 지속되어야 하는 정말 운명론적 만남에 우리는 너무 가치를 두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 밥을 먹고 배설을 하듯이, 그리고 그러한 만남은 소홀히 하기 쉽다. 항상 있던 존재의 갑작스런 증발-죽음 내지는 영원이라고 단정 짓기 충분한 이별-은 때때로 무디어 있던 우리의 의식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생물과의 만남은 만남이라고 규정짓기에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책과의 만남 또한 이런 부류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로부터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많은 영양분을 섭취한다. 실로 고마움 그 자체다. 만남은 대화를 유발시키고 사고를 구체화한다. 그래서 만남은 소중하다.
만남에 대해서 그만 쓰고자 한다.
왜냐면, 이 지면과의 만남은 여기서 끝내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잠이 무척 쏟아진다.
<86.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