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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을 보내며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11:44:48 조회 : 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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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을 보내며

 

지금 밖에는 은빛의 찬연한 빛이 발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이 밤이 눈이 부시도록 빛나고 있다. 지금 나는 왜 이 펜을 들었을까? 무엇을 하기 위해 이 백지 위를 적시려 하는 걸까? 오늘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뜻 깊게 밀려오고 있다. 마치 회고록 같은 것을 작성하는 기분보다는 1년을 하루에 비교할 때 일기장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나의 마음 속은 들끓어 오른다. 아마 이런 표현 가지고는 형용할 수도 없겠다.

아무튼 비를 맞으며 시작되었던 나의 고 1 시절은 은빛의 신의 축복과 함께 막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비가 눈이 되도록 나는 어떻게 걸어왔을까? 착잡한 기운이 내 전신에 스며든다. 어느 날 아침 새벽까지도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학식장은 온통 수라장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머리 위에 지붕을 이어야 했다. 등산길에 비유하고도 남을 이만큼 고된 입구였다. 새로 장만한 교복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교장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반을 배정받아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미운 정 고운 정다 들어 잊기 어려운 급우들을 생소하게 대하게 되었다.

나의 손자국이 미처 지워지지 않은 1-3반 교실. 이 속에서 나는 장학증을 받으면서부터 실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받은 채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점점 급우들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선생님들을 파악할 수 있을 무렵, 나는 여명회라는 써클에 들어가게 되었다. 회원수는 1학년 7. 쵸이맨을 강조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우리 학교의 모범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이 교정을 뛰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회에 들어간 것부터 나의 1년은 이를 중심으로 생활해 온 것 같다. 준열, , 주익, 철규, 상현, 정식, 나를 포함한 7명은 열심히 뭉쳐졌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7명과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대중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욱더 어렵게 느껴졌다. 서로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이 교정을 적시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고 특히 준열이와 매우 친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상한 것이 있다. 왜 그런지 잘 통하지가 않은 것 같다. 마치 겉껍데기만을 핥아먹는 것같이...... 고교시절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우관계라고들 말한다. 나는 진실한 친구를 얻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한 것도 없다. 그러나 나의 의식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내부의 마그마가 표출되며 튀어나온 돌덩이 중의 하나가 바로 철이였다. 별로 만날 기회라는 것은 없었지만 7,8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서로의 고충을 덜어주기에는 부족했을지 몰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었다. 실로 모진 풍파였다. 이 시련을 겪어나가기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움퍽한 함정에 빠져 들어가듯이 나는 내 자신을 침몰시킬 때도 있었다.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이것의 10분의 1만 이해해주면 다행이겠다.

학급의 실장으로서 나는 3월의 환경정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몇이서 자료를 구입하기 위해서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그런 결과로 우리의 교실은 점점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창틀 구석구석에 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너무 독단적인 처사를 해 버린 것이다. 학급의 운영위원들을 너무나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미련했다. 어려운 일은 나눠서 하면 될 일 가지고 나 혼자 끙끙 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5월의 체육대회,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중학교 때 체육대회는 꼭 한번 해보았기 때문에 더욱 설레었다. 그러나 경기 면에서 우리 학급은 번번이 탈락하고 말았다. 막판에 선주가 달리기에서 잘해줘서 미력하게나마 중위권에는 머무를 수 있었다.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던 얼굴들이 되살아난다.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면서 여명회 선배들을 중심으로 많은 선배들을 알게 되었다. 진실로 좋은 선배들이었다. 나의 문제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그리고 깨끗이 해결해 주었떤 잊지 못할 선배들이다. 빈대짓도 많이 했다. 일명 슈퍼 빈대, 너무나 좋은 감투이다. 나는 돈 안들이고 며칠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아마 이게 선배들과 더욱 친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열심히 웃으면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차마 이야기하기도 싫다. 역시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모든 생활이 공부, 특히 성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다 해도,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해도 일단 시험기간이 걸리기만 하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밝은 표정들 속에는 반드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서로가 경쟁자이기 때문에 한시도 뒤져서는 안 된다. 나는 그때그때 생각에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을는지 몰라도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조잡스런 공부였다. 성적은 처음보다 약간 떨어져 버렸다. 특히 9,10월 달에는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내 자신에게 모든 문제가 있었건만 나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침몰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박차고 나오기에는 매우 힘들었다. 12월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했지만 결국 공부는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고달팠다. 그리고 며칠 전에 학기말 고사를 끝냄으로써 표면적인 1학년 학과공부는 모두 끝났다. 어렵다. 1년을 감수하기가 이렇게 벅찰 줄이야.

이런 생활 속에서 한 가지 밝은 빛이 있다면 바로 그건 방학이다. 여름방학은 7월 달에 여명회 하기 수련회를 시작으로 출발하였다. 여름방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한편 겨울방학 때는 내 자신의 내적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매우 힘썼다. 2학기 때 떨어진 공부를 보충하기 위하여 노력했고 영·수를 보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또한 많은 책을 읽기 위하여 노력했다. 겨울방학 동안에는 별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뜻대로 열심히 공부했을 뿐. 그리고 1월 말 경에 간부 수련회를 갔다. 열심히 뛰어 놀았다. 선배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 긴 겨울방학을 그저 몇 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머리가 안타깝기만 하다.

방학 동안에 읽은 책들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다 인간사의 가장 중요한 사랑 이야기였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인간의 모든 정을 뜻한다. 인간이 정이 없다면 마치 기름으로 돌아가는 기계와 같을 것이다. 고로 사랑은 모든 정신에 깊게 흘러내려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글자 한 구절 한 구절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이 모든 책들은 나를 그만큼 발전시켜 주었다. 메마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찾아서 배워야 한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때 그때의 생각을 글로 적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나, 하나하나를 써놓고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보면 자기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1년 동안 내 나름대로 많은 글을 써 보았다. 지금 책상 속에는 몇 십장 되는 메모지가 까만 글씨로 가득 채워져 있다. 종종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발전한 나의 모습에 기쁨을 느낀다. 읽을 때마다 나는 낯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너무나 편견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게 바로 나름대로 일기를 쓰는 기쁨일 것이다.

1년 동안 나는 너무나 많은 변태를 했다. 많이 발전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많이 타락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자를 택하고 싶다. 나는 그만큼 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나의 생각도 점점 체계화되고 논리적으로 서술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내 자신의 신이 있다. 나는 점점 나의 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이 신의 도움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자신이 생긴다. 누군가 말한다. 자기에 대한 내적 충실의 결과라고. 사람이 살아가면 누구와도 같이 살아갈 수 없다. 단지 혼자만의 외로운 질주일 뿐이다. 이 속에서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바로 자기 자신 말고는 더욱 바랄, 의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상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고 1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누군가 너무 늙게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 얼굴에서 풍기는 기운이 고1같지는 않다나. 아무튼 재미있는 일이다. 지난 졸업식 때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 저 선배들도 1학년을 거쳐 2학년, 3학년이 되어 지금 졸업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슬픈 표정, 기쁜 표정, 이게 바로 3년을 지내고 난 두 가지 얼굴일 것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

지금 내 옆에는 2학년 교과서가 쌓여 있다.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깨끗한 책들이다. 이제 나는 다시 또 이 책들 속에 나의 정을 쏟아 부을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1학년을 깨끗이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어느 때와 같이 해가 뜨건만 나는 이 미묘한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벽의 찬란한 여명을 받으며 시작해야 했을 시작이 대신 비의 축복을 받으며 시작했듯이, 계절 탓에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어언 1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열심히 뛰었다. 열심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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