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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이야기

2015-1 이한열장학생의 이야기, 하나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7-05-31 11:21:01 조회 :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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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에서 이러한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대단한 사상가도 아니요, 이한열 열사와 같은 훌륭한 역사적 인물도 아닌, 양군이라고 부르는 한 동갑내기 대학동기였습니다.

 

저는 스스로 제 대학 첫 학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적지 않았는데도, 생업과 학업이 바쁘다고 합리화하며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부지원을 비롯한 대학들의 이익이 관련된 대학평가의 불합리한 평가기준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권이 심대하게 침해되어 학생회를 주축으로 진행한 공동행동이 진행되었을 때 저는 침묵해버렸습니다. 송도 캠퍼스의 노동자들이 단지 송도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촌 캠퍼스의 노동자들보다 낮은 복지 수준과 더 높은 노동 강도 속에서 근무하는 불합리가 발생해 학생들과 송도 캠퍼스 노동자들이 단결해 투쟁했을 때도, 저는 침묵해버렸습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라는 심리와 ‘내 코가 석자인데’라는 심리에 크게 기인했다고 생각이 듭니다.모순적인 심리였던 것이지요.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 살아가며 그 고통에 크게 공감하고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제 스스로가 그 ‘손길’이 되기는 꺼려했으니까요. 이러한 마음 속에서, 저는 결론적으로 ‘침묵’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가 바로 양군이었습니다.

 

양군은 제가 제 삶에 치중하고 있는 사이, 기숙사 노동자 투쟁위원회의 위원장을 하면서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를 한 편으로는 동경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어 한 학기를 마치고 그에게 어떻게 스스로의 삶과 그런 사회참여적인 삶을 병행해나갈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런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삶이 어디 있고, 사회참여적인 삶은 또 어디 있느냐. 이 둘을 나눌 필요가 없지 않느냐. 지금 우리들이 살기가 힘든 것이 그렇게 내 것과 다른 이들의 것을 구분 짓는 사고방식 자체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

 

그의 이런 말을 듣고, 저는 정수리를 속이 꽉 찬 나무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내 것’을 작은 것이라도 챙기기 시작하면 ‘우리’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억지로 해낸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저는 2학기부터 나름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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