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는 떠나갔어도
그때, 후배인 동지와 나는 같은 전선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전무후무할 살인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하던 민주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치떨리는 분노와 민족과 나
라에 대한 끓는 사랑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학살로 출발한 전두환 살인정권은 87년 초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학생들의 민주화투
쟁을 압살하기 위하여 광분하던중 고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다가 죽였습니다. 고문치사를 하
고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뻔뻔하게 국민을 우롱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편 그들은 영구집권 음모를 위해 내각제를 추진하다 벽에 부딪치고, 민주개헌 없이 호
헌한다고 떠벌일 때입니다. 정통성도, 도덕성도, 일말의 양심마저 없는 전두환 정권의 박종
철사건 은폐조작사건이 양심있는 의사에 의해 증언된 후 온 국민은 다시 분노했습니다. 그
때 이한열 동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을 줄 압니다.
그래서 모든 민주세력이 결집하여 87년 4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게 되었
고, 6월 10일 전두환씨가 노태우씨를 차기 집권자로 지명하는 잠실체육관 전당대회를 무효
화시키기 위해 같은 날 우리는 6․10 민주항쟁을 선포하고 온국민의 참여를 호소했었습니다.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나는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광화문 성공회대성
당에서 대회준비를 서두를 때, 이한열 동지는 모교의 동지들과 출정식을 했고, 바로 그날 동
지는 저 살인마 전두환의 직격 최루탄을 맞았습니다.
동지의 피격소식을 들은 것은 그날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동지가 다시 깨어날
줄 알았고, 그래서 다시 민족․민주운동의 선봉에 서서 자주․민주․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가리
라 믿었습니다.
6월의 함성! 전민중의 행진이 있던 그날, 피흘리고 쓰러진 동지는 침묵으로 저 거대한 민
주대행진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고 그후 서울구치소
에 있으면서 동지가 삶과 죽음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지여! 당신은 6.29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끝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7월 6일 출
소하고 동지를 만났을 때는 이미 한마디의 말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지여! 7월
9일 당신을 영결하던 민주국민장에서 온 국민은 오열하였고, 서울에서만도 100만이 넘는 추
모시민이 당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동지는 갔지만, 동지는 우리에게 참 사는 모습과 의롭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고, 연세민주
동문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뜻이 넓혀져 이제는 40여개 대학의 민주동문회가
결성되고, 우리 모두가 동지처럼 살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지는 죽지않고 부활
해서 우리 곁에, 우리들 마음 마음 속에 살아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아직도 파쇼독재를
물리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당신의 추모비 앞을 지나갈 때는 괴롭지만, 자주․민주․통일의
그날까지 우리 모두는 당신을 가슴에 안고 싸워갈 것입니다.
1989. 11. 14
연세민주동문회 회장
오 충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