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10시~17시

02) 325-7216

후원계좌(신한) 100-028-371614 (사)이한열기념
사업회


4층 - 상설 전시



전시개요
미리듣기 KOR
ENG
JPN
국문내용

전시개요
그날의 이한열, 오늘의 우리 나의 운동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꿈 많던 22살의 이한열은 누구였을까?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남아있는 한 짝 운동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간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에서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전두환은 국민들의 직접 선거 요구를 무시한 채 헌법의 간접 선거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합니다.
6월 9일 오후 5시경,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쓰러집니다. 이 사건은 1987년 유월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유월 한 달 간 전국에서 5백만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로 민주쟁취”를 외쳤습니다. 택시 기사들은 경적을 울렸고 회사원들은 창문으로 하얀 휴지와 지폐를 던졌습니다. 결국 6월 29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시국사범 석방, 인권 침해 시정, 언론의 자율성 보장, 지방자치 실시 등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그해 여름 내내 노동자들은 인권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 투쟁을 벌이며 노동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이한열의 희생과 유월 민주항쟁으로 우리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의 피와 땀, 목숨을 바쳐 만들어진 것임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 조금은 나은 세상이기를,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민주주의를 향한 그 발걸음 멈추지 않기를 꿈꿉니다.

영문내용

Who was Lee Han-yeol? What was the democracy he gave his life to protect? And his shoes... What do they tell us about our path?
In 1980, many Gwangju citizens died horrible deaths as Chun Doo-hwan seized and consolidated power through an indirect election. On January 14, 1987,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 Park Jong-chul was tortured to death. Ignoring calls by the people for direct democracy, Chun announced the April 13 “Defense of the Constitution” measure which declared that the next president, a candidate hand picked by him, would also be indirectly chosen. This enraged those in the democracy movement.
On June 9, 1987, at 5:00pm, Yonsei University student Lee Han-yeol was struck in the head by a tear gas canister while demonstrating at the university gate. This incident sparked the June Democratic Uprising. During the next month, five million citizens across the nation came out into the street demanding an end to the dictatorship, the abolition of the “Defense of the Constitution” measure, and direct elections. Taxis honked their horns and office workers threw rolls of toilet paper out of their office windows. Finally, on June 29, the ruling party candidate Roh Tae-woo announced the 6.29 Declaration which included an amendment to the constitution allowing for direct elections, the freeing of political prisoners, an end to human rights abuses, freedom of the press, and local government autonomy.
The 6.29 Declaration was a great victory, won on the backs of everyday citizens. Throughout that summer workers formed unions and went on strike to improve working conditions and to demand human rights. Through Lee Han-yeol’s sacrifice and the June Democratic Uprising, democracy had come to Korea.
We must remember that events like this don’t just naturally happen. They happen because of the blood, sweat, and tears of those who made them happen. We dream of a better future world, but we also dream of continuing down the long path forward towards democracy.

일문내용

展示概要 あの日の李韓烈、今の私たち
私のスニーカーはどこに向かっているのか
李韓烈(イ・ハニョル)とは何者だったのか。彼が命をかけて守ろうとした民主主義とは何か。残された片方のスニーカーは私たちに何を語りかけているのか。
1980年5月、光州で市民を虐殺して権力を握った全斗煥(チョン・ドゥファン)政権は間接選挙によって大統領になった。1987年1月14日、(남영동)南営洞(治安本部)でソウル大生 朴鐘哲(パク・チョンチョル)が拷問によって死亡 した。それでも全斗煥は国民の直接選挙を求める声を無視したまま憲法の 間接選挙条項をそのまま維持するという4.13護憲措置を発表する。
6月9日 午後5時頃、延世大学校の学生 李韓烈がデモの途中で催涙弾を 直撃されて倒れる。この事件は1987年6月民主抗争の起爆剤となった。
6月の1か月間、全国で500万人以上の市民たちが街頭に出て「護憲撤廃 独裁打倒」「直選選挙で民主勝ち取れ」を叫んだ。タクシー運転士たちは警 笛を鳴らし、会社員たちはビルの窓からトイレットペーパーや紙幣を投げた。
結局6月29日、当時の与党、民正党の大統領候補 盧泰愚(ノ・テウ)は大統領直接選挙制改憲、政治犯釈放、人権侵害是正、言論の自律性保障、地方自治の実施などを内容とする6.29宣言を発表した。平凡な市民たちの偉大な勝利だった。
を闘い続け、労働組合を結成した。李韓烈の犠牲と6月民主抗争によって この社会に民主主義のルールが根をおろすようになった。
私たちが当然のことのように享受してきたものが、実は当然なことではなか ったことを、誰かの血や汗、生命を犠牲にして作られてきたことを記憶して いこうと思う。私たちの未来が今より少しでも良いものになることを、そう やって少しずつ進化する民主主義に向かう歩みを止めないことを夢見なが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