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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리 (1986. 12.露-12.31)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00:00:00 조회 :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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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리 (1986. 12.露-12.31)

 

25일 저녁 광주에 도착했다. 새롭게 안경을 수리하고, '나라'에 들렀는데 S.B를

하다가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간신히 빠져나왔으나, 주인

아저씨가 권한 한 대의 담배는 아직까지 입속에서 머문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다가 하마터면 조직이 탄로 날 뻔 했다. 광주에서는 S.B를 단념하고, 28일에

『모택동사상연구』『베트남 현대사』두 권을 '삼복'에서 구입했다. 돈을 빼앗기고

나온듯한 허탈감이 두 다리를 간신히 지탱한다.

26일에는 집에서 소일하며 보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러 . R사를 끝내고 중 . R

를 읽기 시작했다.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고시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내 일

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서로 극

을 달리는 의견이었다. 나의 생각을 부모님 앞에서 감히 말씀드리지 못한 내가 밉

기도 하지만, 지금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책이 읽히지는 않는다.

27일에는 준열, 정식, 상현을 만났다. 모두 얼굴이 깨끗하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상현은 왜 그리 늦었냐고 장난조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게 다 농

담이 아닌 만큼 나 혼자 가슴속에 쌓아둘 수는 없다. 내가 너무 쉽게 규정지어버려

지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걔들과는 그런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

졌다. 왜냐면, 지금까지 광주 내려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느

니 부모님 걱정도 생각하자느니 하면서 Phsico라고 웃어넘기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당구치며 어울리고, 커피마시며 어울리고 하는 게 친구라는 정이기 때문

일 거라면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꼭 어제 보고 오늘 보는 것 같다는 상현이의

말은 나를 포근히 감싸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28일에는 칠규, 우석 등을 만나서 파전에 소주를 했다. 뭐 다 잘살고 부족함 없이

사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EDPS에 지나지 않음은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6시에는 원재를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광주에서 처음으로 운

동에 대해서 공감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게 나에게는 벅참으로 끓어올랐다. 2학년인 걔는 학회장을 맡게 되며, 앞으로 운동을 풀어 나가는데 웬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보다 지방대학의 운동열기가 가열참을 알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자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연이틀 저녁 늦게 술 먹고 들어온다고 아버님이 굉장히 섭섭해 하시는 것 같다. -

게다가 아침에는 8시가 넘도록 자고 있으니 심히 걱정되시는 것 같다. 나태한 생활

을 한다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폐가 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29일에는 오천이를 만났다. 서울에서 3수 생활을 했다고 한다. 굉장히 어렵게 했

구나 싶었다. 걔가 굉장히 후하게 맥주, 커피를 사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많은 고등학교 친구들의 소식을 들었다. 군대 간 친구들이 너무 많았

고, 대체로 그렇게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오천이는 여자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심성이 약간 여린 그로서

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많은 사회 제반문제를 거론하며 그 문제를 승화

시키고 싶었다.

나름대로 말로는 잘된 것 같지만 얼마나 내가 진실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가 어떻

게 받아들여 정리해 냈는지 무척 궁금하다. 특히 그의 말을 통해 고3때 2학년 후배

를 퇴학시킨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학생이 퇴학을 당하고 정리를 하지 못

한 채 계속 폭력을 행하다가 집유로 풀려 나와 또 사건을 만들어 도바리 생활을 하

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3 때 11월 초순경 사건이었는데, 시험을 핑계로 내가

너무 소홀히 취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 당시 그와 면담 한번 해보지 않

은 게 무척 마음에 걸린다. 인간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꽉 찬다.

그날 저녁 이후 많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을 소홀히 한 것은 철저히

재고해야겠다. 30일에는 늦잠을 자고 조카와 노닥거리다가 12시 경에 철이 집엘

갔다. 철이 또한 삼수를 했는데 시험을 2교시 보다가 나왔다나 글쎄. 국방대학

간다고 방방 뜬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며, 그의 장래에 대해 일

단 검정색을 추려본다. 급작스럽게· 여명회 송년회를 추진하여 2회 선배님에게 알리

고 1.1회 이하 15회까지 모였는데, 약 15명 정도가 나와서 반이 채 못 되었지만 나름

대로 회 정리를 하고 선후배간의 친목도모는 잘됐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시험 본 후배들이 별무리 없이 서울대에 가게 되어 걱정은 덜었으나 내 자신이 열심히 하지 못해 현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참 서운했고, 후배들에게 미

안한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더라도 KW가서 산박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뭐 부

질없는 생각이지만서도 현 위치에서라도 열심히 해 나아가아겠다.

1차 모임이, 2차 모임이 끝나고, 상호와 인명이를 데리고Cafe를 갔다. 상호는 이

번에 재수를 한 일 년 후배이고 인영이는 과기대에 입학한 1년 후배인데 주로 이야

기는 운동권 중심으로 흘렀다. 과기대에서도 서서히 사과공부를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웠다. 일면 기뻤다. 기본적으로 대학생으로서 사회를 보는 방법과

철학과 과학의 관계성, 그리고 철학과 과학의 실천성 ·현실성, 그리고 운동권 문화

의 설명 등으로 내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별무리는 없었던 것같고, 대체로 공감하

는 이야기장이었다고 결론내리고 싶다.

11시 경에 당구장에 들렀는데 그때까지 당구를 즐기고 있는 아해들을 보니 일말

의 쓸쓸한 감이 들었다. 뭐 사는 방법까진 일치할 수 없으니만 하는 자위를 해보기

도 한다. 11시 반경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훈이를 데리고 집엘 돌아왔는데, 잡

념없이 계속 공부만 해서 꼭 KW 가라는 마음과 함께 여유 있으면 미리 좀 사회에

대해 고민해봐라 하는 형의 마음이 단지 마음으로만 머물고 말았다. 열심히 해낼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아버님으로부터 친척집에 인사드리고, 선생님에게도 일단 가서

인사드리고 오라는 훈계를 받았다. 선생님들이 한창 바쁘시겠지만 가서 인사 드리

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1월 초에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오늘(31일)아침에 게으르다고 또 아버님께서 호통을 치신다. 이리저리 눈 밖에

나기만 해서 참 그렇다. 약 5일간의 생활정리를 하면서, 나의 모습이 만난 사람들

에게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하는 것과 조직 내에서 생활과 비교해서 Tension이 많

이 풀렸다는 생각이 교차되며 친구핑계로 쁘띠적 생활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또한 든다.

하긴 계속 맥주 소주였으니 책값 포함해서 2만원 깨진 게 다 근거 있는 이야기다.

굉장히 낭만적으로 살아가는 이한열 학형,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SM의 근거

는 표출해졌나요. 그에 대한 확신이 듭니까? 제반 부닥치는 문제들에 용기 있게 대

처해나갈 자신은 있습니까? 뭐 낭만적으로 산다는 게 흐지부지하게 사는 것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압니다. 그 속에 매몰되지는 마십시오. 마 약간 정

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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