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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유고 글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11:44:00 조회 : 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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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아늑한 좋은 밤. 항상 나의 마음을 새롭게, 그리고 그 새로움에 벅차오름을 억누를 수 없는 가운데서 엉겁결에 지나가는 밤의 환영.

비록 피곤하고 솜 이부자리가 가까이 느껴지더라도 곧 밤의 정적을 살피곤 한다. 나의 나와 대화. 나와 벽과의 대화, 그리고 라디오와의 운율. 이 세상에 가장 즐거운 보람을 찾은 나의 철학적인 세계인만큼은 틀림없다. 항상 대하는 FM DJ들의 낯익은 목소리가 항상 귓가에 울렁거리며, 때로는 나의 귀를 뚫어주고, 때로는 눈을 감기게 하는 여린 전율도 흐른다.

이 밤, 나는 혹 나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래 버티기 시합도 하고, 책 많이 읽기 시합도 하고, 많은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시합도 하고, 아무튼 밤은 나와의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전쟁터인 셈이다.

모든 인내와 노력과 성실은 바로 이 밤에 싹튼다. 형광등 불과 함께, 아늑한 좋은 밤의 서정을 위하여 햇볕 뜨거운 낮에 그 많은 업적을 쌓아왔다. 항상 많은 후회와 경이감 속에 파묻혀 막을 내리고 마는 이 하루하루의 밤. 이런 밤을 서울행 완행열차 안에서, 친구 집에서, 아니면 길거리에서 만나고 싶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 아늑한 나의 조그만 안식처를 찾게 되는 나의 마음은 하루의 편안함을 잠시라도 느끼기 위해서다.

밤에는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없다. 나홀로 자문자답을 해보며 결국 자기 반성시간이 되는 것이다. 월광이 창문을 뚫고 스며드는 밤이면 항상 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 누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런 말을 해줄 것, 오늘 수업시간에 조금만 더 신중히 대답할 것,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상냥하게 대해줄 것, 아냐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잘했어 하는 등등의 온갖 그리운 님들이 나를 정화시키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나의 님들은 내일의 무거운 이정표를 던져주며 밤의 컨트롤까지 조정해주며 때로는 일찍 자라고 하곤 한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만 썼구나. 좀 심각해 볼까. 아냐, 계속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아냐, 그게 좋아. 책상 앞에 있는 초콜릿이 더 먹고 싶은데. 아니 동생 주지. 시험이 이틀 남았는데 영어를 해야 하는데. 아니야, 천천히 하지. 항상 상쾌한 기분에서 능률을 올리자구. 나 혼자서 멋대로 느껴보며 달빛에 나의 별을 접근시켜 본다. 저 달이 꽉차는 보름까지는 나의 생활도 보름 인생을 만들어 봐야지.

한때는 기특한 생각이 든다. 요즈음 항상 생각한다. 나를, 나를, 나의 주위를, 나의 몸을, 나의 길을, 나의 머리를. 그리곤 항상 자기만족에 웃거나 자기불만에 심적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오늘밤도 천정은 나의 마음을 정리시키고 나의 잃은 내 길을 이 아늑한 좋은 밤에 감시해준다.

 

밤에 한열,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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