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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유고 글

촛 불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11:55:42 조회 : 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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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 불

 

이제 촛불을 켜야 할 때입니다.

저녁 빛 황혼이 불씨가 되어 이제 막 잠든 태양을 대신하여 촛불을 켜야 할 때입니다.

너무 밝은 형광등 불빛은 나의 그림자마저 삼켜버립니다.

어둠은 내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싫습니다.

심지가 타지 않는 촛불의 끝은 은은한 향기로 mood를 잡아줍니다. 손짓 하나하나에 그림자를 볼 수 있어 마침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한권의 수필집을 주황빛으로 약간 물들여 눈을 또렷이 뜨고 읽고 싶을 때 한 잔의 차와 한 모금의 담배는 그대로 사색 그 자체입니다.

너무 밝지 않아 겨우 내 몸 앞밖에 밝혀주지 않는 촛불은 마침내 내 일기장이 되고 맙니다.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고요히 서있는 촛불은 석굴암의 미륵보살들처럼 살결이 훤히 비칠 듯한 가운을 입은 여인네와 같습니다.

마침내 흐르르 흘러내리는 촛불은 아직 마르지 않은 불 위에 눈물 같기도 하고,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모습은 촛대를 더욱 운치 있게 해 주며, 우리의 삶을 훈훈히 해 주는 이웃집 사람들의 웃음 있는 생활 그 자체를 느끼게 합니다.

이제 곧 그 촛불을 꺼야 할 것입니다.

이제 어둠이 내 눈꺼풀을 완전히 짓누르면, 나는 황홀한 꿈으로 빠져 들어갈 것입니다.

만약 꿈속에서 어둠이 짓누른다면, 나는 얼른 내 마음의 촛불을 켜고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촛불은 우리를 조용히 의자에 앉게 합니다.

그 곳에는 타다가 또 타는 우리의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촛불을 꺼야 할 때입니다.

<8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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