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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이야기

2015-1 이한열장학생의 이야기, 여섯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7-05-31 11:22:47 조회 :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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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생활은 저에게 많은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뉴스도 보고 기사도 찾아보기 때문에 나름대로 사회문제에 잘 안다고 자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현장들이 있었습니다. 국정원 진상규명을 위해 모인 시청광장의 10만 촛불이 그랬고, 부당해고에 10년째 저항하고 있는 코오롱이 그랬고, 26명의 동료가 죽고 굴뚝으로 올라간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그랬습니다, FTA를 반대하며 목숨 같은 쌀을 태우고 울부짖는 농민분들이 그랬고, 광화문역 천막사이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는 장애인분들이 그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찬 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그랬습니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던 저는,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앞에 부끄러웠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바꾸겠다던 어리석은 생각과 프레임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외면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그리고 지금 잘못된 것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부끄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였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며 하지정맥을 판정받은 마트직원은 이모였고, 죽기살기로 몇 년동안 일해도 퇴직금 없이 쫓겨난 식당아줌마는 엄마였습니다. 치솟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견디다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휴학을 결정한 대학생은 동기, 후배, 선배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독재시대로 후퇴시키는 국정원선거개입에 대해 분노했고, 이한열 대학생 실천단을 통해 서울곳곳을 돌아다니며 알리는 활동들을 했습니다. 또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학생실천단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노동문제를 이야기하는 현장에 연대하며 그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시민들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통일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에도 함께하며 평화를 이야기하는 대학생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과 학생회장을 하며 교내의 교육문제를 알리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대학구조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힘을 모으는 데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니 주변에서 이런 물음을 많이들 던집니다. ‘너는 졸업하고 무슨 직업을 가질거니?’, 언론, 출판, 방송 등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던 저는 흥미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하기위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제가 정확이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꿈은 더 확고해졌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느 직업을 갖게 되든지 제가 있는 자리에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하는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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