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여, 뜬구름이여
그릇 속에 담겨진 보리차를 바라본다. 시커먼 보리 속에서 우러나온 그 색을 보고 그 냄새를 맡아본다. 이 보리차는 지금 그릇 형태 그대로를 취하고 있다. 얼지 않는 한 이 모양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출렁일 수 있다. 이것을 얼음으로 만들기에는 무척 힘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양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조심조심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형태는 그대로 남을 수 있지만 언제나 물같이 유동적인 정신은 도저히 고정시킬 수 없다. 그리고 더 심하여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이 머리를 맴돌 뿐이다.
한컵의 물을 바라보며
그 속의 정취를 맡아본다.
도저히 멎을 수 없는
이 한컵의 흐름을 되새겨 본다.
이 지구가 아무리 돈다 하더라도
이 물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너무나도 작은 이 물질을 감히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없단 말인가.
컵속에 묵묵히 피어오르는
이 하얀 연기를 훔쳐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이미 사라져버린 그 물거품을.
오직 하나만을 만들기 위하여 나는 나머지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도 마저 깨버려야 한다. 결국 나는 나를 만들고 죽었도다.
뜬구름은 그냥 떠있는 구름이다. 누가 그 속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
사사로운, 그리고도 진지한 잔일에 대한 결과를 놓고 우리는 자주 한심해진다.
지겨운 그 속이 다시 찾아온다면 나는 차라리 그 관념을 바꿔 쓰겠다. 너무나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 그저 시간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그 현인들이 그립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를 사모한다.
머리 속에 맴도는 어떤 구름이 있을 때, 우리는 소낙비로 그것을 해치우려 한다.
내일은 또 오늘이 된다. 자꾸 머물러가는 오늘, 그러나 우리가 잠든 새에 시계는 벌써 한 바퀴를 돌아버리는 것.
쏟아지는 물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단 방울소리가 울릴 뿐이다.
볼펜속의 조그마한 공을 굴리며 다시 또 그 자취를 밟아본다. 하나도 재미없는 그 자취를.
아무도 외롭지 않는 그 세대에는 나라는 존재가 여러 번 있을 것이다.
시계바늘을 돌리는 태엽이 되라. 그저 소리만 듣지 말고.
개성을 개 같은 성미라고 표현한 그 위인이 불쌍하다. 그는 틀림없이 1초의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1억초를 이번엔 잃어버렸을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인생을 창작하라. 일회는 절대 팔릴 수 없다.
구름이여 뜬구름이여.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다같이 살아간다. 그리고 한번 죽어본다. 고맙소. 지난 미래를 생각하자.
<고교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