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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
불길 속 고교생의 외침 "왜 로보트 교육받아야 하나“
후송차 타기 전 "통일의 노래를 불러 달라" 30년 전인 1991년 5월 18일. 마지막 행사로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이 운동장에 둥그렇게 모여서 학생회가 써 온 '우리의 결의'를 읽는 시간이었다. 그때 학교 건물 동편을 지나 누군가 강렬한 불길을 일으키며 뛰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겁하고 학생들이 물러나며 통로를 내자 어떤 학생이 원 안쪽으로 들어와서 똑바로 선 채로 호령하고 있었다. "너희들 이렇게 잘못된 교육 계속 받을래?" 옷가지들이 다 타버리고 팬티 일부만 남은 상태로 두 주먹을 똑바로 쥔 채로 서 있는 학생은 3학년 김철수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와중에도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동료 교사의 차에 태워서 가까운 보성아산병원으로 후송하는데 어떤 학생이 나에게 쪽지 한 장을 전해주었다. 연습장을 찢어 쓴 듯한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통일의 노래를 불러 달라.” 철수가 차를 타기 전에 했던 말을 적어서 내게 전달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무엇을 해야 할지 정신이 돌아왔다. 마이크도 꺼져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서 있는 힘껏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학생들도 이내 정신을 차리는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여러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확실히 믿습니다." 철수가 이런 결심을 하는 데는 명지대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고, 이에 분노하여 죽음으로 항거한 전남대 박승희 열사의 분신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광주에 있는 전남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시종 꿋꿋한 모습을 보이더니 다음과 같은 유언을 녹음하고 6월 2일 오전에 운명하여 열사가 되었다. "우리가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현 시국이 어떤 사회로 흘러가고 있는지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자기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저는 엄연한 학생입니다. 제가 왜 그런 로보트 교육을 받아야 합니까? …중략… 무엇이 진실한 삶인지 하나에서 열까지 생각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하는 일마다 정의가 커져 넘치는 그런 사회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 힘이 없습니다. 3주일 동안 밥 한술도 못 먹고 하루에 물 한 컵만 먹고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지금까지 힘차게 살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확실히 믿습니다. 다음에 살아서 더욱 힘차게 만납시다.”
교내 봉사동아리 지도교사로 만난 김철수 그와 나의 인연은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교내 봉사동아리인 '인터랙트' 회원으로 들어왔고 나는 지도교사였다. 철수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가까운 친구들이 증언해주었다. 학구열이 표현된 일화로 고등학교 2~3학년 때 새벽 2~3시까지 빈 교실에 가서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공부가 잘 된다고 하면서. 수위아저씨에게 열쇠를 달라고 하니까 귀찮아져서 어느 날부터 열쇠 보관함을 가르쳐주셨다.
한 세대 전 처참한 교육 현실에 정면으로 대항 보성고 교정에 세워진 김철수 열사의 동상. 동상은 친구들과 후원자들의 성금, 또 전교조, 보성교육지원청, 보성고등학교 교장과 학생들의 지원과 참여로 2017년 10월 28일에 보성고 교정에 세워졌다. 이런 김철수 열사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것은 정의로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순수할 뿐만 아니라 학습 능력이 우수하고, 일생을 좌우할 가치관을 길러야 할 시기에 무한 경쟁만 가르치는 학교 교육이 가장 큰 문제이다. 물론 그 학교 교육의 폐단을 조장하는 것은 학연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되는 우리 사회의 병폐와 그것을 떠받들고 있는 입시정책이다. 그래서 학생의 개성과 소질을 존중하는 교육이 아닌, 무한한 학력 경쟁에 학생을 종속시키고 대상화하는 교육이다. 김철수 학생은 한 세대 전에 이런 처참한 교육 현실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열사가 된 것이다.
*이 글을 쓴 정경호 님은 1991년 당시 보성고 교사를 지내는 등 36년 동안의 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퇴임했다. 현재는 김철수 열사의 염원 가운데 하나를 실현하기 위해 통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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