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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
2018년 《보고 싶은 얼굴》에서 만나는 세 번째 얼굴 - 고미애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1992년 2월 14일자 한겨레신문에 ‘이웃사랑 약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작은 키에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작은 체구였지만 고미애 약사는 그 안에 뜨거운 불덩어리를 품고 있었다. 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을 채 풀어보지도 못한 채 한줌의 재로 한강에 뿌려진 고미애 약사.
그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지역보건분과장으로 전국을 누볐으며 ‘부천지역 민주운동협의회’ 상임위원, 철거민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고자 했던 ‘주거권 실현을 위한 부천시민연합’의 상담 실장으로도 일했다. 그와 번갈아가며 약국을 보았던 동료는 그가 “하루 약국 일을 14시간씩 하면서도 한 달 생활비 20만원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보람있는 일에 쓰기 위해 꼬박 저축을 하였다.”고 한다. 장례식에서 만난 이들은 고미애가 수많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고 깜짝 놀랐다. 28세에 짧은 생애를마감하게 될 줄 알고 그랬을까? 더욱 애처로운 것은 고미애 약사는 6년 동안 사귀었으며 결혼해 함께 지역에서 활동하기로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고 그는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고미애의 죽음으로 한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서워하고 범죄자 취급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인도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외국인노동자들을 미워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한 진료 봉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부천과 성남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사회적 약자이면서 범죄자로 낙인찍힌 외국인 노동자들을 품는 단체들이 여럿 결성되었다. 고미애의 죽음이 밀알이 된 것이다. 유월 항쟁 30주기에 맞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천 시흥 분회 회원들은 ‘이웃사랑 고미애 약사상’을 제정하여 지역사회에서 약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에 주고 있다.
# 신은미 작가
2009년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였다. 관객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극단에서의 경험 이후 무작정 전국일주에 나선다. 무전여행을 하며 인연을 맺은 분들에게 한국화를 그려 선물하였다. 2016년 전주한옥마을에서 ‘사라바림’ 아트샵을 운영했다. 2017년 12월 평창동계올림픽특별기획 ‘한국의 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강진 세계모란축제, 전주한지축제, 싱가포르 세계도시정상회의 등 다양한 행사에서 한국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현재 KBS ‘6시 내고향’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다. 관객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아티스트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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