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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보고 싶은 얼굴》에서 만나는 세 번째 얼굴 - 박승희
박승희는 우여곡절을 딛고 전남대학교 가정대학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한다. 과대의원과 교지《용봉》 편집실 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사회비판적인 글을 자주 썼다. 167cm의 큰 키에 짧은 커트머리의 박승희는 수줍음이 많고 섬세하며 그림그리기를 즐겼고 한지를 접어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건강한 삶은 자신의 생활공간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매일같이 편집실 청소를 도맡아 하기도 했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총학생회장 석방을 위한 구출 대회 중 백골단의 무차별적인 구타로 머리에 타박상을 입고 죽는다. 한 대학생이 정권의 폭력에 의해 죽었는데 학생들의 관심은 예전 같지 않았고, 박승희는 그 사건 때문에 많이 괴로워했다. 유서에 적힌 날짜로 보면 27일 분신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29일 아침, 어머니가 겨울신을 사 신으라고 쥐어주신 돈으로 총학생회장에게 줄 밝은색 넥타이와 편집실 후배에게 줄 초콜릿 등을 산다. 그리고 ‘강경대 살인만행 규탄 및 폭력정권, 살인정권 규탄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이날 오후 3시 5분경, ‘2만 학우 단결, 미국 반대, 노태우정권 타도’를 외치며 제1학생회관 앞에서 분신했다. 박승희 열사는 그렇게 분신으로 자신의 뜻을 알리고 21일 간 병상 투쟁 후 5월 19일에 사망하였다. 장례는 7일장으로 하고 명칭은 ‘겨레의 딸 자주의 불꽃 고 박승희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정했다. 유서에 코스모스 씨를 남기고 “학우들이 잘 다니는 교정에 코스모스 씨를 뿌려 해마다 코스모스가 만발하게 해달라”고 했다.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는 열사의 모교 전남대 교정에서 학우들과 함께 추모문화제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매년 기일에 추모제를 지내면서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 김경화 작가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입체조형전공,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해양대학교 외래강사, 부산 원도심 문화창작공간 ‘또따또가’ 입주작가, 부산문화예술교육연합회 운영위원, 40계단문화관 자문위원, 책방골목문화관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지금까지 여섯 차례의 개인전과 세 차례의 2인전, 다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생활문화공동체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풀어내 보고자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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