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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보고 싶은 얼굴》에서 만나는 네 번째 얼굴 - 노수석
“어려운 일이 있는 때는 참 괴롭다. 그러나 아무런 어려운 규칙이 없는 게임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듯이 어려움 없는 인생도 무미건조할 것이다.”
그를 시위현장을 이끈 것은 1996년 3월 대통령의 대선자금공개와 대학 교육재정확보 투쟁이었다. 3월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결의대회. 그도 거리로 나섰다. 학교별로 사전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종묘 일대에 집결해 “김영삼의 92년 대선자금 공개하라” “교육재정 확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평화적 집회였는데도 경찰은 ‘토끼몰이식’ 진압작전을 펼쳤다. 학생들은 을지로 동대문 등으로 도망했다. 그 과정에, 그가 쓰러졌다. 함께 움직이던 동료에게 어딘가를 “맞았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다리에 쥐가 났다고도 했다. “더 이상 못가겠다, 가게 같은 데 들어가자”며 인쇄소 골목으로 들어간 뒤 보이지 않았다. 골목 안 대현문화사라는 인쇄소 안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상태가 이상했다. 학생들이 그의 위독함을 몇 번이고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묵살했다. 뒤늦게 국립의료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나 절명했다. 1976년 생, 1996년 몰.
가족과 추모사업회는 사인의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꾸준히 투쟁했다. 2003년 9월에서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으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받았다. 60%의 관련성을 인정받은 불완전한 인정이었다. 그의 육신은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 쉬고 있으나, 그의 영혼은 산과 강물과 우리들 속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 이버들이 작가
이버들이는 1974년생으로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사진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일상의 장소에서 개인의 실존적 자아를 재현하기 위해 20~30대 여성들을 그들의 생활 공간으로 찾아가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그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어서 남성들의 ‘소년성’에 대해서도 천착, 작가가 생각하는 소년의 상징-치기어림이나 반항 등의 이미지를 연출해내기 위해 역시 20~30대인 남성 모델들을 야외에서 누드로 사진 속에 담아내는 작업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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