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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6월 11일자 [책의 향기]운동화와 함께 되살린 6월, 그날의 기억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6-06-22 13:50:56 조회 :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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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제 친구 M도, J도, I도, K도 그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L의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면서 M과 J와 K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운동화는 사실 많은 사람의 운동화다. 한 사람의 기억은 사실 많은 사람의 기억이다.

김숨이 ‘이한열의 운동화’를 소재로 삼은 소설을 집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찍이 관심을 모았다. 1987년 6월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한 달 뒤 병원에서 숨진 22세 청년.  

그의 희생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피격 때 이한열이 신었던 270mm짜리 흰색 타이거 운동화는 오른쪽 한 짝만 남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밑창이 100여 조각으로 부서질 정도로 손상됐다.  

‘L의 운동화’는 이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로 운동화는 지난해 3개월에 걸쳐 복원됐고 현재 이한열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소설은 미술품 복원가인 화자가 ‘L의 운동화’를 복원해 달라는 청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L의 운동화를 최대한 복원할 것인가? 최소한의 보존 처리만 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것인가? 레플리카(복제품)를 만들 것인가?’ 화자가 어느 쪽을 택할지 고심하는 것으로 소설의 절반이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운동화 한 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유품은 개인의 삶이 담긴 기록물로, 나아가 공동체의 기억이 담긴 물건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복원 작업 중 다른 복원가의 자폐아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극적인 서사가 있는 건 아니다.  

생명력을 갖는 건 ‘L의 운동화’다. 운동화에 에폭시수지(접착제)를 주입하자 밑창에 금이 간다. 극도로 허약해진 환자가 약을 투여받은 뒤 발작을 일으키는 것 같다. 화자는 작업을 중단하고 운동화를 지켜본다. 지금 접착제를 주입하면 죽을 것 같으니 기다려 달라고 운동화가 외치는 것 같아서다. ‘L의 운동화는 싸우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L의 운동화에 발생한 것이다.’

작가는 “실제 복원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들어 있다”며 “모든 분과 함께 완성한 소설”이라고 했다.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그날의 애도와 기억을 되살렸다. 그것이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 모두의 기억임은 물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