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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전의 첫 번째 얼굴 - 최종범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9-10-08 16:11:19 조회 :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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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2019 《보고 싶은 얼굴》 展의 여섯 얼굴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최종범 님입니다.

 

2013년 10월 31일, 천안의 한 도로 차 안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차 안에 번개탄을 태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였다. 차 안에는 별도의 유서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바로 전날 자신이 속한 모임의 단체 메시지 방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이 글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되었던 그가 다음날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된 것이다.

 

삼성서비스노조 천안분회 회원이었던 최종범이다.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 가세가 기울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고등학교도 공업계로 진학했다. 그리하여 2010년 얻게 된 직장이 삼성서비스 천안센터였고, 업무는 에어컨 수리 전문기사였다. 이 곳에서 일하는 동안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다. 그러나 수입은 늘 불안정했다. 에어컨 수리는 계절을 탔다. 여름에는 한 달에 400만 원도 벌었다지만, 주유비 등의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기에 실제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 200만원 정도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그만큼이었다. 비수기에는 이 금액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같은 처지의 서비스 기사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2013년 7월의 일이었다. 회사의 위장도급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건설되고 전국에 분회가 생기면서 최종범도 천안분회에 가입한다. 그는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조합원들의 단체 대화방에서도 많은 발언을 하고, 1인 시위에도 참여했다. 천안분회는 협력업체 직원 90명 가운데 42명이 조합에 가입하는 등 전국 어느 지회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결국 이런 활동은 회사의 눈에 박힌다. 삼성의 탄압이 시작된다. 그의 담당 지역에 본사 직원들이 들어오고, 그가 마땅히 맡았어야 할 수리 작업을 본사로 빼돌렸다. 안 그래도 적었던 수입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추적 감사를 실시한다. 수년 전 자료까지 소급하여 손실 금액을 월급에서 차압했다. 철저한 노조 파괴 공작이다. 개인적인 탄압도 이어졌다. 협력업체 사장은 최종범에게 대놓고 욕설과 폭언을 했다. ‘새끼’라는 호칭이 아무렇잖게 나왔다. 수입은 줄고, 회사의 감사와 모욕까지 이어지자 그는 몹시 괴로워했다. 자주 힘들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털어놓았다. 죽기 전날 그는 결근을 했다. 걱정하는 동료에게 “내일 출근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노조 단체 메시지 방에 글을 남겼고, 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 세 살의 젊은 아빠. 딸의 돌잔치를 한 달 앞둔 때였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열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삼성 사용자에게 노조탄압 중단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교섭할 것 등을 요구했다. 19일 간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 투쟁을 하고, 51일 간 싸웠다. 그 결과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는 12월 20일 삼성전자서비스가 교섭을 위임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합의에 이른다. 최종범은 사후 55일만에야 비로소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고단했던 영혼을 누였다.

 

삼성은 화해 제스처를 썼다. 노동자들의 생활임금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무자비한 노조 탄압으로 ‘무노조 역사’를 자랑해온 삼성이다.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전략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공작은 계속되었다. 1990년 경남지역 삼성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91년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 당한 뒤 무려 28년 째 삼성을 상대로 복직투쟁을 해온 김용희 씨가 삼성 노조 파괴 공작 피해의 산증인이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삼성은 그를 해외에 파견하려 했고, 간첩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30대에 해고되어 올해 정년퇴직 연령인 60에 이른 그는, 현재 삼성의 사과와 원직 복직 합의를 요구하며 서울 강남역 사거리 삼성전자 사옥 앞의 철탑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 중이다. 삼성 노동자들의 부자유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종범의 죽음도, 그래서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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