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패 풍연의 추모굿과 이소선 합창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이민아 민주일반연맹 토평톨게이트 지회장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슴에 와 닿은 추모사는 이민아 토평톨게이트 지회장의 추모사였습니다. 이소선 어머님이 누구이신지도 몰랐지만 투쟁하면서 알게 되었으니 비로소 노동자가 된 것 같다고요. 동료들이 해고될 때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고요. 아줌마들 농성하는데 한 달이라도 버티겠냐는 조롱을 받았지만 연대해준 노동자들이 있어 승리할 수 있었다고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토평톨게이트지회 이민아 님의 추모사 원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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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처음 불러 봅니다.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시지만 당신을 저희는 잘 몰랐습니다. 투쟁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비로소 노동자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흰 두렵고 무서웠어요. 매년 수백명의 동료들이 해고로 직장을 떠나갔지만 소리한번 내지 못한 세월이 10년 20년이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어요. 하루하루가 쌓여 십수년이 지나니 사람이 그렇게 되더군요.
그런 저희가 또 다른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자회사를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아스팔트와 캐노피 고공에서 싸움을 시작했어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해고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옳다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나와 우리에 대한 사랑이 제일 크답니다.
두 달 넘게 투쟁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의 연대와 지원을 받았습니다. 또 우리가 연대를 하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거 없는 노동자들은 단결해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싸우면서 느끼고 있답니다.
전태일 열사님 그리고 어머님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 속에서도 결국은 사랑으로 실천하고 깨달으셨을 거 같아요. 그 깨달음의 백분의 일이라도 저희가 알까요? 그런데 싸워보니 예전의 저희들의 모습이 아니게 됩니다. 이젠 예전의 노예같은 모습으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못할 거 같아요. 도로공사가 저희들에게 이야기 한게 있어요. “아줌마들 수 백명이 농성한다는데 돈도 없고 한 달이라도 버티겠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보았어요. 점점 더 억센 투사가 되어가는 동료의 모습과 밥과 물, 물품과 기금, 문화와 마음으로 연대하는 동지들의 모습을요. 노동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이런 것일까요?
저희는 버티며 전진했고 점점 더 강해지고 단련되고 있답니다. 이제는 법적으로도 승리해서 더더욱 저희가 옳다는 것을 증명 해 내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8주기. 저희 열심히 싸울께요. 부당하니까요. 억울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옳으니까요. 저희가 옳았으니까요.
싸움의 기록을 승리로 남겨서 어머님 영전에 바칠께요. 그 기록이 쌓여 노동자 주인되는 세상의 자그마한 벽돌 한 장 되길 바래봅니다.
어머님. 1500명 요금수납원들이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도의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