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국가유공자의 범주는 독립, 참전, 민주, 안전, 공무수행으로 나뉩니다. 고엽제전우회 분들은 참전자들이니 국가유공자입니다. 민주유공자는 4.19, 5.18 관련자만 특별법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그 외에는 국가유공자가 없습니다. 국회에 2017년 11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마석 모란 공원에 가서 민주 열사들의 묘역을 정비하고 왔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묘역을 정비하면서 전태일 열사도 민주유공자가 아니라고 했더니, 모두 놀라시더군요. 전태일 열사도 ‘민주화운동관련자’일 뿐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많은 분들을 어떻게 국가유공자로 예우할 수 있을까요?
우선 현 상황을 알리고 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유해야겠지요.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도 국가유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자는 여론을 형성해야겠지요.
구체적으로 법률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2000년 통과된 ‘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및 심의에 관한 법’은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들이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422일 동안 농성을 하셔서 겨우 얻어냈습니다. 그때 당신들이 60대셨지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님과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님은 돌아가셨고,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님은 팔순이십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또 거리로 나서야 할까요.
올해 2.28기념식과 5.18기념식 뒤 오찬에서 한 유가협 어머님이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제정의 필요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뒤 보훈처 담당자가 어머님을 뵙고 의견을 들었습니다. 보훈처는 현재 발의된 법률안의 타당성에 대한 조사를 한양대 법대에 의뢰하였습니다. 용역을 받은 이들이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국회에서 의결이 되어야 하지요.
자유한국당 때문에 국회에서 법률 통과가 어려운가요? 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의석을 합하면 과반이 되지 않나요?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지방정부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에서는 ‘민주화운동관련자 예우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였습니다. 전라남도는 2017년 11월 제정, 2018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고, 광주광역시는 2018년 6월 의결되었으니 곧 시행될 것입니다.
자신이 사는 곳의 국회의원, 아는 국회의원에게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전할 수도 있겠지요. 민주동문회 등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함께 요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추모연대 등에서 농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게 생각나는 건 이 정도입니다.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하신 분이 계셨지요.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봅시다. 다시 팔순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거리로 나서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 관장 이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