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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학년도 1학기 장학생이 본 이한열과 6월항쟁-박솔희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0-02-03 00:00:00 조회 :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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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들은 열사의 이름 이한열. 바쁘게 입시를 준비하면서 그의 이름은 교과서 한 귀퉁이의 역사 속 인물 정도로만 기억하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2008년의 거리에서 저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창 촛불의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이한열 열사의 기일을 맞게 된 것이었습니다. 5월부터 이미 저는 거의 매일같이 광장에 나가고 있었고, 광화문의 이순신장군 동상에서부터 청계광장을 지나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까지 이어진 인파 속에서 우리는 6월을, 이한열 열사 21주기를 맞았습니다. 유난히 푸르고도 비장감이 서려 있던 6월의 거리 위에 연세대 학생들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던 모습이 아련히 기억납니다. 6월 항쟁 기념일에는 이한열 열사의 모친께서도 광장에 나와 구름처럼 모여든 100만의 민주시민 앞에서 발언하셨던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주지하다시피 이한열 열사는 1987년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으로,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사망하고 맙니다. 6월 9일에 일어난 이한열 열사의 부상은 6월 10일의 항쟁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함께 6월 항쟁을 언급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열사정신을 계승하고 보다 나은 민주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이한열장학회, 이한열기념사업회도 그러한 취지에서 연세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동권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바보 과대’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어떤 과대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다른 학생 운동가들처럼 학우들을 가열차게 조직하여 시위에 데리고 나가거나 교양하려고 들기보다는, 항상 바보스럽고 미련할 만큼 학우들을 배려하고 후배들을 챙기며 씨익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집회가 열리자 그의 바보스러움은 싹 사라졌습니다. 그는 만사를 제치고 대오의 최선봉에 서서 투쟁했고 결국 연행되었습니다. 그러자 학우들이 동요했습니다. 사실 대학 내에서는 가끔씩 집회에 참여한 학우가 연행되거나, 총학생회 간부가 수배되거나 하는 일들이 있지만 요즘 대학에서는 대개 혀를 찰 뿐 결국은 남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결의 넘치는 발언을 하고 수많은 후배들을 조직하던 어떤 능력 있는 운동가가 연행되었을 때보다도, 다만 사람 좋고 착하던 이 평범한 친구 바보 과대가 연행되었을 때의 파장이 더 컸습니다. ‘운동’이라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던 학생들조차 발 벗고 나서 그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며 피켓을 들었습니다. 결국 학우들의 도움으로 석방된 바보 과대는 예의 그 바보스런 웃음으로 학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기존의 학생운동이 어떠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으며 학생 운동가들이 학우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훈을 주는데, 저는 이 ‘바보 과대’에서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한열 열사가 그 당시 학생운동의 흐름에 있어서 남다르거나 특별히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평범하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바보 과대에 가까운 보통의 대학생이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는 평균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모범생, 우등생으로 자라 연세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대학생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학생운동에 필연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교우관계가 좋고 성격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바보 과대가 그랬듯, 6월 9일의 집회에서 만사를 제치고 최선봉에 섰을 것입니다. 그 이한열이 다치자 일어난 것이 6월 항쟁입니다. ‘바보 과대’의 석방을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던 학우들처럼 이한열의 부상에 동요되어 일어난 6월 항쟁은 민주화를 위한 거대한 물결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남을 배려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닌 평범한 청년 이한열의 죽음은 그래서 더 의미가 큽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 며칠 만에 500만이 넘는 추모 인파가 몰린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인의 삶이 대중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대단한 인물이지만 사실은 가장 평범하고 또한 인격적인 이한열의 삶, 노무현의 삶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나는 솔직하고 싶다. 이 세상이 나를 배반하고 나를 죽이려 해도 나는 결코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한열 열사는 자신이 남긴 말처럼 비록 짧은 생을 억울하게 마감했어도 결코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경멸하고 있는 것은 우리 대학생들이 아닌가 반성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가 꿈꾸었을, 지금 우리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20대,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생들이 보다 힘차게 노력해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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