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에 강명구씨가 기고하신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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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논쟁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강명구(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변명
제목을 적어 놓고 상당히 오랜 기간 망설였다. 내가 이 글을 꼭
써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식상할 정도로 많은 토론이 오간 주제인데 괜스레 아무도 읽지 않는 또 하나의 그저 그런 군더더기를 덧붙이는 것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론매체에 오르내린 남들 이야기가 정말 참기 어려울 정도여서 학자적 자부심이 발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꼭 써야
할 도덕적 소명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청탁 받은 원고도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세상을 바꾸려는 독재자의 황당한 광기도 알고 보면
거미줄 쳐진 다락방 노학자의 펜 끝에서 그 논리적 근거가 발견된다는 경제학자 케인즈(Keynes)의 학자적 자부심 근처에도 나는 가 본 적이
없다. 지적(知的) 자부심보다는 조심스러운 도덕적 미안함이 앞선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내가 세상을 대접한 것보다는 세상이 나를 대접한 것이 더
많은 삶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래서 케인즈보다는 “세상에 태어나 쌀 한 톨 지어보지 않았으면서도 학문이랍시고 하는 벌레만도 못한 나”라고 실토한
실학자 이익(李翼)이나 제국주의 조국에 태어난 숙명에 괴로워했던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더욱 와
닿는다.
그럼에도 주제에 관한 흥미가 발동한 것은 얼마 전 읽은 몇 권의 책이 던진 문제의식을 적용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
때문이다. 큰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내심 언론에 소개되는 논쟁들에 이런저런 막연한 의구심이 들던 터였다. 이 책들은 한번 나의
이런 의구심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라는 자극을 주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다소간 한가하고 자유롭게 정리한 것이니 의당 글의 형식 또한
딱딱한 학술적 규격보다는 다소간 체계만 잡은 수필 형식이 더욱 온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런 선택에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논쟁들이 지나치리만큼
학술적이랄까 혹은 현학적이랄까 하는 것에 대한 은근한 경계가 들어있기도 하다. 외국의 언어로 휘갈겨 쓴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들고 환자가 난감해
하는 경우나 뻔한 내용임에도 고학력 당사자가 몇 번을 읽어야 뜻이 통하는 법원의 판결문은 내가 의사나 변호사라도 (한편으로는 직업적 영역의
배타적 확보에 안도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 변명을 늘어놓았으니 내가 그간 느꼈던 논쟁에 대한 의구심이
무엇이었던가로 말머리를 돌려보기로 하자.
몇 가지 의구심
우선 가장 크게 다가온 의구심은 논쟁의
적실성(適實性)이었다. 이런 추상적 논쟁이 정말 일반인들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를 의심해보았다. 한번은 복잡한 수리경제모형에 매달린 경제학
전공 동료에게 우스갯소리로 경제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빼고는 모든 것을 연구한다고 뼈 있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판 붙은 진보개혁의 성공 혹은 실패 논쟁은 정작 당사자인 일반 국민들만 빼고는 언론, 학계, 정치권 등 모든 분야가 다
동원된 듯이 보인다. 그 주제도 일반 국민들의 마음을 판독하는 것 말고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부터 시작하여 지역주의,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를 거쳐
정당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건드리지 않은 것이 없다.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실험 20년 만에 이렇게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에 대한 성찰치고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엘리트 집단과 몇몇 언론매체가 대체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담론 형성을 주도하고 또한 자신들의 입장에 걸맞게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갑남을녀(甲男乙女)의 마음이 진정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귀 기울이는 것은 학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찌 보면 일반 국민들은 그냥 가만히 있는데 전문가들끼리(혹은
‘꾼’들끼리) 모여 바람 잡는 것이 아닌가 한번 자문해볼 일이다.
물론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당연한 반론은 얼마든지 예상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면 칠갑산 아래서 삼베적삼 적셔가며 콩밭 매는 여인네가 고생하는 것을 어찌 (카길사와 같은) 다국적 곡물회사의
횡포와 무관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정치경제학적 반론이 나온다. 일반인의 의식구조를 얽매고 있는 언론과 지역주의 등의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
충분히 공감한다.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제도라든가 국제 경제체제와 같은 구조적이며 외생적인 변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러한 요인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마음이 정작 어떠한가를 살피는 일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항용 이러한 논쟁들을 보면 일반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보나마나 다 헤아려진 상태라고 알게 모르게 단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여러 번이었다. 언론이나 몇몇 연구소가
수시로 주관하는 주제별 여론조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일반 국민들의 저변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의식구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등한하다. 현실과 이론과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이런 논쟁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하였던 것은 이들 논자들이 내뿜는 열정이 너무 강렬하여 한숨 고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사물을
관조(觀照)하는 정도에서라면 항상 안사람의 핍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건만 그래도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잡다 보면 지나치게 이념적
조급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자신들이 견지하는 이념에 대한 충실함이 정치인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듯 이념에 대한
교조적 입장과 간발의 차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주장 중 마음에 안 들어도 들어줄 것은 들어주는 여유가 부족하였다. 그러다 보니 흑(黑)
아니면 백(白)이었다. 세상은 실제 대부분 회색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중도 논쟁은
흥미롭다. 이른바 변혁적 중도(백낙청), 비빔밥 중도(황석영), 강한 중도(홍윤기) 등이 그것들이다. 한 가닥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돌아보아
변화한 세상의 이치를 새롭게 받아들이려는 자세에서는 경청할 대목이 적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논쟁으로부터 정도(degree)의
차이는 느낄 수 있지만 종류(kind)의 차이를 느끼기에는 어딘가 신선하지 못하다. 이른바 ‘뉴’ 라이트가 ‘올드’ 라이트로부터 얼마나 틀리냐는
진보 진영의 비판은 제 자신에게도 그대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느낌을 주니 논자들의 진솔한 시도와는 달리 혹시 선거용 중도론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른바 중도론은 기존의 논쟁 판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동시에 내가 가졌던 첫 번째 의구심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교외(郊外)의 전사(戰士)들
이쯤 되면 당연히 “그렇다면 네 이야기는 무엇이냐?”라는 힐난의
지점에 다다를 시점이니 내 일상의 과정을 곁들여 편안하게 말머리를 돌려보기로 하자. 연구년을 맞아 (매우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미국 남부의 한 도시에 온 지 한 달하고도 반쯤 되었다. 이곳은 1980년대 유학 시절과 견주어 크게 변하지 않음과 크게 변함이 공존하여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미국은 아직도 몹시 풍요롭다. 촌뜨기 유학생을 압도하였던 그 물질적 풍요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하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중국이 다 만들고, 그 만든 물건들은 미국이 모두 소비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게 하였다. 허나 같음은 여기서
그쳤다. 사람들은 친절하였으나 제도는 매우 불친절하였다. 9․11 이후 미국의 전통적 실용주의는 국토방위의 미명하에 관료적 폐쇄성과 외국인에
대한 진입장벽 설치로 변질하였다. 이곳서 살아가려면 필수인 운전면허 따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경험을 하였기에 이르는 말이다.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미국적 풍토에 대한 심리적 불편함에 더불어 쓸데없는 소비와 과시적 혹은 습관적 낭비에 대하여 지극히 마뜩치 못한 심사를 품어온
나이기에 오자마자 옷이며 소소한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중고가게에서 구입하였다. 뽕 따러 가서 님도 본다고 (혹은 님 보러 가서 뽕도 딴다고)
중고물품 가게 옆의 중고 책방을 들렀다. 눈과 목과 다리를 어느 정도 혹사하니 그 대가가 왔다.
하버드대 역사학과의 리사
맥거(Lisa McGirr) 교수가 2001년에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교외의 전사들(Suburban Warriors)』이라는 책1)은
부제(副題) ‘미국 신 우파의 기원(Origins of American New Right)’이 적시하고 있듯이 레이건 이후 미국 신보수주의의
발흥을 깊이 있게 추적한 저서이다. 맥거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하고도 심대하다. 어째서 1960년대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사망선고를
내렸던,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보수주의가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주도적 담론과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는가? 그것도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아닌
(보수주의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학력 교외 지역의 중산층 지역에서 말이다. 맥거가 던진 질문은 나도 무척 궁금하던 터였다. 그토록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이 어떻게 조지 부시와 같은 인물을 아버지에 이어 두 번이나 내리 대통령에 당선시켰는가? 아울러 이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은 (후술할 바와 같이) 내가 그동안 한국의 보수에 대하여(아울러 그 연장에서 진보에 대하여) 지녔던 정형화된 인식의 틀을 되돌아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많은 피를 흘리고 쟁취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들은 수구보수의 연장인 정당에 그토록 많은 표를
몰아주었는가? 그리고 어쩌면 이리도 싸늘하게 한때 진보에 바쳤던 함성과 열기를 그토록 매정하게 거두어들이고 있는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질문에
답하기 위한 문제의식을 벼리는 순서로 일단 맥거의 이야기를 추적해보자.
이야기는 1964년 3월 로스앤젤레스 교외 지역인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의 한 중산층 부엌에서 이른 아침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회계사인 남편을 둔
킬스마이어(Kielsmeier) 부인이 커피를 끓여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지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에서
극우파로 유명한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작전 Q(Operation Q)’의 성공을 위하여 그 첫
모임을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즉, 맥거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고수하였던 화려하고 요란한 정치적 표출 방식에 비하여 그늘에 가려
있지만 확실히 아래로부터의 실체가 있는 키친 테이블(kitchen table) 보수의 조용한 혁명을 추적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 반공을 기치로 내세웠던 매카시즘의 쇠퇴는 이곳 오렌지 카운티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1960년 케네디 행정부의
출범으로 진보주의가 미국 정치의 주도적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을 때도 이곳의 보수적 정치문화는 굳건하였다. 고도기술 집약적 산업구조를 바탕으로
번성하는 지역경제와 그에 편승한 이른바 카우보이 자본주의(cowboy capitalism)의 득세는 연방정부의 복지지향적 정책을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Big Brother)’로 치부하였다. 이런 바탕 위에서 매카시즘의 쇠퇴는 킬스마이어 부인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은 보수적
중산층의 지방정치 참여 활성화로 이어져 나갔다. 베트남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주장하던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의 패배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보수주의의 정치적 동원은 이 지역에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즉, 정치적 보수주의의 패배가 결코 보수주의 자체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역의 보수주의는 지방정치의 영역을 벗어나 연방정부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번져 나갔다.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지역자치 강화와 복지축소를
통한 감세정책의 추진은 1978년 그 유명한 ‘납세반란(Tax Revolt)’이라는 주민발안 13호(proposition 13)의 통과로 그
위력을 발하였다.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물론 정치의 영역에서도 줄기차게 이루어져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전직 영화배우 레이건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시켰고 이후 레이건은 대통령에 취임하여 뉴딜 연합을 대체하는 신보수주의 연합의 초석을 놓게
된다.
그러나 1960년대의 정치적 패배가 곧 보수주의의 쇠퇴를 가져오지 않았듯이, 1970년대 보수주의의 정치적
승리만으로는 1980년대 이후 보수주의가 미국 내 주도적 정치이념으로 자리 매김 한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일반적인 삶의 모습과 연결된
사회적 이슈로 정치적 이념이 확대되지 못하면 그러한 정치이념은 지원병 없이 전선에서 적과 대치하는 군대의 모습과 진배없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레이건과 같은 그들의 지지 세력을 정치권에 ‘심어’놓고 난 후 미국의 진보 세력들이 선점하고 있던 혹은 새롭게 보수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슈를 지지 세력의 동원을 통하여 맞받아쳤다. 이는 곧 정치적 보수주의가 사회운동으로 진화하는 것을 뜻하였다. 부패, 도덕, 종교 등의 단일
이슈 영역에서 먼저 논쟁이 일기 시작하였다. 일단 방향 전환에 성공하자 교육, 외설, 낙태, 종교적 자유의 문제 등이 줄이어 봇물 같이 터져
나왔다. 특히, 마지막으로 근본주의적 종교관인 복음주의(evangelicalism)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계층(고등교육을 받은 첨단산업
종사자가 주류를 이루는 백인 중상류 계층)에서 힘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면 보수주의가 더 이상 일과성의 유행이 아니라 보다 깊은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맥거는 이러한 보수주의의 근본적 동인(動因)을 대략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진보주의자들이
구축해놓았던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에 대한 반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진보주의가 구축해놓은 가치체계가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는 것에 주목한다. 먼저 보수주의자들에 있어 연방정부의 복지국가적 간섭은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2)를 박탈하는
거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비쳐졌다. 자율과 경쟁에 기초한 서부 개척의 역사적 경험을 들이대며 오늘날에도 연방의 간섭은 이 지역의
경제적 번영과 그리고 이들이 이룩하여 놓은 각종 자율적 권리(혹은 기득권)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앞서 지적한 납세저항운동과 주민발안
13호의 통과는 대표적 사례였다. 뿐만 아니라 카우보이 자본주의들이 거대한 지역개발 프로젝트를 통하여 굳힌 각종 기득권에 대한 연방의 간섭과
규제는 이들 거대 자본에 직접적인 이해관계의 상충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해관계의 상충 못지않게, 어쩌면 직접적 이해관계의
상충이 없던 일반 시민들을 보수주의적 정치조직화 동원체계로 불러 모은 것은 케네디 행정부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진보 진영이 견지하였던
가치체계와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의 대립관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liberal pluralism) 혹은 세속적
합리주의(secular rationalism)로 정의할 수 있는 진보적 정치이념이 문화적 다원성, 도덕적 상대성, 그리고 협상과 개인적 자유를
강조하였다면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보수주의적 정치이념은 근면과 검소 그리고 진지한 종교적 도덕성을 강조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다양한
가치관의 범람 (이를테면, 교육, 종교적 타락, 동성애, 개인 자유의 방종으로 인한 공동체 의식의 쇠퇴, 히피 문화 등등)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체계에 대한 심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위기의식이 종교적 신념으로 전이된 것이 복음주의적 신앙의 부활이었다.
한국의 경험
우리와는 역사적 경험이 다르고 정치 문화의 형성 또한 많은 차이가 나는 미국의 경우를 빗대어 한국에서의 진보와 보수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비교라는 논박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또한 적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맥거의 저서를 일별하면서 적잖이
비교의 충동을 아니 미국적 해석의 한국적 적용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20여 년의 민주화 실험이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로의 회귀라는 강한 암시를 받는 요즈음 이 책을 접하고 난 후 정말로 이러한 진단이 올바른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세대적 정체성은 이런 작업을 하기 편한 자리에 놓여있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이제 50줄을 넘은 나는
이른바 386 민주화 세대의 선배 세대이면서도 동시에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산업화 세대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세대로서 어쩌면 ‘어중치기’
세대이다. 이른바 송호근이 어느 신문 기고문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되는 “낀 세대”의 모호한 정체성 말이다. 내 선배 세대는 보수가 그리고
후배 세대는 진보가 주도적이라고 거칠게 구분한다면 나는 분명 ‘낀’ 세대이다. 한 편으로는 내 선배 세대의 진지함을 물려받았으면서도 그 고루함에
식상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후배세대의 자신감과 다이내미즘을 동경하면서도 그것들에 묻어있는 경박함에 우려한다. 그러나 정체성의 의문이 있는 만큼
한 발 물러서서 이것저것 분별하며 가릴 수 있는 틈새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행운도 있다. 이런 ‘어중치기’ 세대의 틈새 여유를 비집어 맥거
교수의 논조를 접목해보자.
적잖은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보수와 진보를 가늠함에 있어 한국적 특수성은 그 가늠자가 계급이라기보다
지역과 세대로부터 출발하였음은 쉽게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일찍이 우리가 보수를 산업화 세력, 진보를 민주화 세력이라 할 때 일차적 기준은
세대이고 이차적이며 암묵적 기준은 지역이었다. 학생운동이 계급을 대신하였으며 재야가 노동자 정당을 대신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산업화의 혜택을
주로 받은 지역은 보수 지역, 그리고 산업화로부터 소외되었던 지역은 보다 진보적인 지역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제를 매우
조악하게 반영하는 지나치게 섣부른 이분법적 분류였지만 동시에 단순한 만큼 그 영향력도 컸다. 그리고 그 영향력의 결과는 익히 알져진 바와 같은
선거 결과와 권력 구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진보와 보수의 개념정의는 각 개념이 추구하였던 긍정적 가치체계 못지않게 암묵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상대방 개념의 반사경에 비추었는바, 보수는 반민주, 진보는 반성장이라는 낙인을 상대방의 현관 문패에 각인시켜 놓았던 것이다.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상대에 관한 가장 부정적 낙인의 흔적은 역시 분단에 관한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보수의 눈에 진보는 친북좌파 성향의 위험한
국기 문란자로 비추어졌고 진보의 눈에 보수는 민족의 이름을 그들의 문패에서 지운 친미, 친일의 역사적 잔존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틀을 문제 삼을 수 있는 몇 가지 흥미로운 현상들이 민주화 이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독립 변수로서 세대와 지역에 버금가는 계급의 문제가 부상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정치 권력적
잣대에 대한 비판으로서 여성, 환경 등과 같은 새로운 논쟁의 영역(유행어를 따르자면 이른바 포스트모던 한 영역)이 보수와 진보의 명확한 구분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점들은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그래서 어찌 보면 서양적 관점의 진보와 보수 논의가 가능해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민주적 발전의 징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깊이와 현실 적합성의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굳이
여기서 상세하게 논의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러한 주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관심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내 자신도 이러한 영역의 논제가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음을, 그래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각을 측정하는 새로운 기준치로서 중요함을 부인할 심사는
없다.
정작 맥거의 저서를 접하고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기존의 논의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이런 논의를 뛰어넘는 또
다른 질문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진보와 보수 모두 논쟁의 내용으로만 치자면 심대한 차별성을 보이는데 막상
정치적 논쟁의 판을 떠나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오십보백보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죽을 듯이 싸우다가도 동창회에서 만나면
선후배로 변하고, 진보나 보수나 재테크하고 조기유학 보내고, 진보나 보수나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는 무엇 하느냐?’고 따지고, 화염병 던지며
투쟁하는 모습만 보면 한국이 곧 망할 것 같은데 다음날이면 멀쩡하게 돌아가고……. 정치란 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제대로 반영해주지
못한다면 진보 보수 모두 그들이 외치는 정치적 이념지형이 무용(無用)함을, 아니면 허상(虛像)임을 스스로 독백하는 것에 다름 아닌가? 즉,
일반인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진보와 보수는 그들의 논쟁에서 빠뜨린 너무도 당연한 가치체계가 있을 수 있거나 아니면 이들은
엄존(儼存)하는 현실을 왜곡하여 그들의 논쟁에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끼워 맞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 점에서 맥거의 지적은
한국의 경우에도 매우 유의미할 것이다.
맥거의 해석에 따르자면 미국 신보수의 발흥과 예상을 뛰어넘는 지속적 성장은 미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간주해왔던 중심가치의 존재와 이러한 존재의 수호를 위해 대도시 교외 중상류층 백인 사회의 정치, 사회적 동원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이 당연시 여기는 중심가치들이 있다는 가정은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중심가치는 전통과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새롭게 태어난 것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의 논의는 이러한 전통적 가치들의 존재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해지고 솔직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치권력의 판에서 벌어지는 고담준론과
생활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상성의 담론 간에 생긴 틈새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중심적인 가치들의
존재
한국의 경우에 있어 무엇이 맥거가 지적한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들에 견줄 만한 지위를 지니는 것일까? 논란의 소지가
있겠지만 일단 선정의 기준을 밝히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하자. 일단 중심적인 가치가 되려면 남녀노소 그리고 진보와 보수 모두를 대개 아우르는 성격을
지녀야 할 것이다. 물론 계층과 지역 그리고 세대에 따라 이러한 중심가치는 서로 상이하게 발현될 것이지만 이러한 모든 구분들이 중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중심적 가치는 가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규율하는
규범력을 지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중심가치는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역사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모두 종합한다면 중심적인 가치체계는 장시간에 걸쳐 구축되어 우리의 행위 양식을 규제하는 내재적인 힘을
지닌 가치의 종합적 발현이라 할 것이다. 뚜렷한 논리적 근거나 통계적 당위성을 들이대기는 힘들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상당한 비판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부자 되세요! 우선 생각나는 것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잘 살고 싶은’ 욕망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고매한 정신세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전혜린이 번역한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처음 읽고 난 후의 그 가슴 저몄던 감흥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 정신세계에 덧 씌워진(내가 그리도 힘닿는 한 반대하였던)
박정희의 주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가의 문제는 논외로 치자. 하고 싶은 말은 우리네가
지닌 성장과 발전에 대한 끊임없는 칭송과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참지 못하는 퇴보에 대한 불관용이다. 이것은 인생의 바닥에서 시작하여 신화적 성공을
이룬 자수성가형의 심리상태이다.
연전에 내가 재직한 대학의 특강에 이른바 운동권 출신의 도지사가 초청되어 행하였던 연설이
생각난다. 지방 거버넌스(governance)에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이 그래도 어느 정도 강조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내 예상은 초전박살이 났다.
주제는 민주주의나 지방자치가 수식어로도 사용되지 않는 개발론 일색이었다. 골프장과 축사(畜舍) 중에 어느 것이 더 반(反)환경적이냐는 질문에
용기를 내어 당연히 골프장이라는 답변을 한 청중은 무안을 당하고 말았다. 이 도지사가 몇 년 전 내가 행하였던 한국 시민사회의 조사결과에
의존하여 이런 식의 특강을 행한 게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였지만 매우 놀랍게도 정치인으로서 이 도지사는 나의 연구결과와 거의 진배없는 정확한 예측
하에 강연을 하였던 것이다. 나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성장과 환경의 택일에서는 주저 없이 배고픈 친환경보다는
배부른 반(反)환경 혹은 반(半)환경을 선호하였다.
한국의 이러한 성장에 대한 열망은 남미의 경우와 잘 비교된다.
경제(철)학자 허쉬만(Albert O. Hirschman)에 따르면, 남미의 경제부침은 물론 종속이론가들이 주창한 바와 같은 구조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동시에 축적 기능에 대한 이념의 형성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탈종속을 하기 위하여 산업화를 시도하였지만 어느 정도 발전을 한 연후에는
페론의 민중주의(populism)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성장이 아닌 분배 쪽으로 방향 선회를 하였던 것이다. 이는 세계시장의 석권을 위한
치열한 제국주의적 경쟁이 국가주의와 결합한 유럽의 경우나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의 경우 경제성장 우선이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것과 잘
비교된다. 이 지역에서는 비록 분배를 강조하여도 한 번도 성장에 관한 열망이 식은 적이 없었다. 이를 권태준은 “함께 잘 살기 민족의식”이라
하였으며3) 허쉬만은 이를 “영혼적 갈구(soul searching)”라고 표현하였다.4) 우리나라의 방송 광고도 이를 이용하여 비록 천박하지만
일반인들의 가슴에 가장 잘 와 닿게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물론 최근 들어 변화가 없지는 않지만 아직 까지 성장과 발전은
우리에게 결코 ‘다소간(more or less)’의 문제가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all or nothing)’의 경기로 남아 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중앙을 향한 구심력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 선거공약 실천이라는 명분으로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하려 하자
우리나라 헌법의 최고 해석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불가 판정을 내린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소설 같은 이야기다. 수도를 이전한다고 지금과 같이
심화된 지역 간 불균형이 해소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연유로 나는 내심 다소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헌재의 이런 판결은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코미디였고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허구의 논리가 그나마 일반 국민들 사이에 큰
소란을 야기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심력의 존재에 기인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의 위력이 허풍이 아니었음은 대한민국 먹물들이 우상으로 추앙하는 정약용이 가족에게 보낸
서신을 보아도 나타난다. 언젠가 읽은 기억에 따르면 정약용은 식솔들이 사대문 안에서 일정 거리(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걸어서 한양의 궁성에
닿을 수 있는 거리로 기억된다) 이상 떨어져 살면 중앙의 영향력에서 멀어지므로 삼가라고 당부하였다.
굳이 헌재 판결과
정약용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 서울로 대변되는 중앙의 의미는 대단하다. 학교 이름에서 시작하여, 거리 이름, 상가에
이르기까지 중앙이 갖는 의미는 압도적이다. 한마디로 최고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 입문으로 고전적 저작에 속하는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의 책 『소용돌이의 정치(Politics of Vortex)』5)는 참으로 탁월한 제목 선정이라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중앙으로 중앙으로만 몰입하는 사회. 넓지 않은 전체 땅 덩이의 2.5%에 전체 인구의 25%가량이 모여 사는 국가이다.
서울시는 비록 특별시이지만 엄연히 법적으로는 하나의 지방자치 단체이다. 그러나 이런 엄연한 사실은 현실과의 괴리가 엄청나다. 일반인에게 있어
서울은 곧 중심이자 중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은 관습 헌법적으로 중앙을 의미하고 수도를 뜻한다. 지방분권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학술 토론회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여타 광역단체에서는 서울이 중앙으로부터의 분권을 이야기하면 웃어버린다. 중앙에 있는 것이(아니,
따지고 보면 중앙 그 자체인 것이) 중앙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고 다들 비판 일색이다.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한
지방분권화 정책은 지방적 수준의 민주주의 정착을 통한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본디 뜻도 무시하기 힘들지만 동시에 이러한 극도의 중앙집권과 서울 과대
성장을 막기 위한 조처로서도 의미가 컸다. 그러나 분권화 정책을 통하여 이런 목적을 얼마나 달성하였는가를 살피면 아직도 참으로 난감한 수준이다.
갈 길이 멀다. 아무리 제도를 강구하여도 한 사회가 학벌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이 똥 걸레 같은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이, 아무리
온갖 제도적 방편을 강구하여도 중심에 대한 국민들의 이 지칠 줄 모르는 불나방 같은 욕망을 잠재우지 않는 한 분권적 균형발전은 갈 길이
머나멀다. 모든 제도의 개발은 결국 악순환의 강화로 귀착된다. 고속철도를 놓았으니 지방에서 살아도 별 문제 없다고 하여도 오히려 그 고속철도를
타고 쇼핑하러 오고 과외 받으러 오는 형국이다. 마치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것 같은 이 중심적 가치를 어찌하면 치료 가능할 것인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지적하고픈 것은 가까운 장래에 이 중심가치의 희석이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면적(面的)
존재로서의 국가 내 짧은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 관공서가 멀리 느껴진다. 끽해야 우편물로
배달되는 안내문 정도이고 연말 가서 세금 정산할 때만 그 위력을 느낀다 하여도 큰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경찰로 표상되는 공권력의
무서움 혹은 양면성을 관찰하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평소에는 그리도 친절하던(?) 경찰들이 일단 검문을 시작하면 그리도 사나울 수가 없었다.
개인의 영역에 대한 침해는 법으로 엄하게 보장되어 있지만 공권력에 대한 부당한 도전이 있다고 간주되면 정말이지 가차가 없었다. 물론 9․11
이후 미국이 바뀌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하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와 본 미국은 아직도 한국과 확연히 달랐다. 일단 이곳에 적응하고 나면 보편적
실체로서의 국가를 느끼기 어려웠다. 국가보다는 시장관계가 훨씬 더 피부에 와 닿았다. 무슨 일을 하든 주민등록 등초본으로 나를 확인시켜야 하는
한국적 현상, 즉 국가라는 실체의 보편적 존재감이 몸에 밴 나에게 미국의 경험은 참으로 새로웠다. 그러나 동시에 취객이 파출소에서 행패를
부리고, 상호 간 합의된 시위법규를 어겨도 끝에 가서는 유야무야되고, 천문학적 규모의 회계부정도 사면으로 끝나는 재벌의 모습 등을 상기하면
오히려 국가권력의 구체적 존재감이 희석되었다.
미국의 경험과 한국의 경험을 일차원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그래도
미국이 국가권력의 구체적 존재감이 강한 반면 보편적 존재감이 취약하다면 한국의 경우는 그 반대라 하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맥거가 이야기한 신보수주의자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국가의 보편적 존재감을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농구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미국은 강도 높은 부분 방어전략(이른바 존 디펜스 zone defense)을, 한국은 강도는 약하지만 전체적 압박
전략(이른바 올 코트 프레싱 all court pressing)을 구사하는 것이다. 또 다른 비유로서 도시 발전의 형태를 인용하자면 미국은 특정
지역을 집중 개발하는 점적(點的) 존재감을, 한국은 넓게 퍼진 도시화의 형태인 면적(面的) 존재감을 준다고 할 것이다.
면적
존재로서의 국가는 일면 이른바 발전국가의 양태와 잘 어울린다. 일상생활의 넓은 부분에 존재하면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하여 경제성장이라는 발전 목표에
투자한다. 그러나 국가의 존재는 여기서 그치고 구체적 생산의 행위자는 국가가 아닌 기업의 몫이었다. 넓이는 국가가, 깊이는 시장이
분점(分點)하는 상태였다. 도처에서 마주치는 국가적 통제 하에서도 기실은 시장적 이해관계의 추구에 목매는 21세기 초엽의 우리네 자화상이 곧
이와 다를 바 무엇인가? 아울러 면적 존재로서의 국가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깊이의 취약함으로 인하여 사회 여러 세력으로부터의
침투에 의외로 견고하지 못하다. 정경유착의 고리도 그렇고, 끊임없이 정권의 존재에 도전을 가하는 학생집단을 위시한 저항 세력의 존재가 그러하다.
그 결과 제도외적(制度外的) 방식을 이용하여 정권의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통념을 키운다. 그토록 강고해 보이던 군사정권의 몰락은
결국 이러한 심리적 가능성이 집단행동의 양식으로 표출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와 같은 국가에 대한 면적 존재감은 민주화로의 이행은 손쉽게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는 민주화에 대한 피로감(democratic fatigue)으로 나타나기 쉽다. 한국에 있어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에 대한 중심적 가치관은 결코 구미식의 자유주의적 국가관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거론되는 작은 정부 중심의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는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중심적 가치관과는 간격이 사뭇 넓다할 것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희미한 구분 노무현 정부의 인사정책을 폄하하면서 이른바 “코드인사”라는 신조어가 유행하였다. ‘돌려막기’니 ‘회전문인사’니 하는 비판에
대한 정부 측의 반론은 적어도 논리의 연장선상에서는(현실의 사실적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일단 판단을 유보하자) 비판론자보다 우세하였다. 반론의
핵심은 ‘그렇다면 다시 학연, 지연이 우세하는 정실인사로 돌아가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논리적으로는 승리한 반론이었으나
현실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논박이었다. 한국인이 가진 중심적 가치관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서양식 근대성은 아직 한국사회에 엄하게 자리 잡지 못하였다.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그리도 강조되면서도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민사회의 취약성이
쉽사리 고쳐지지 못하는 것은 결국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기능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원활한
연계에 있다면, 양 영역이 명확한 경계 구분이 없으니 그 기능의 원활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결국
한 개인의 공적 행위에 있어 충성심의 귀착점이 어디냐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계급, 국가, 집단, 가족, 그리고 개인 등의 귀속점을 상정할 수
있다. 원론적이며 정답지향적 답변은 보다 공적 영역인 국가와 계급적 이익일 수도 있을 것이나, 보다 현실적인 답변은 집단과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사적 이해관계의 추구일 것이다. 공적 행위의 충성심 귀착 문제는 결국 도덕성의 문제와 동전의 앞뒤면 관계를 형성한다.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해야 할 재벌들의 탈법적 직계 상속 관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위상을 자랑하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군이 공과 사의 충성심 귀속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서양식 근대성의 잣대를 들이대어 설명하기는 참으로 곤란하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한국의 3대 마피아라고 불리는 고려대학동문회, 해병전우회, 그리고 호남향우회의 존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있어 충성심의 귀속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외피(外皮)는 공적 표지를 달고 있는데, 내피(內皮)는 사적 표지가 지배적이다. 첨예한 정치 이념적 대치관계를 형성하던
정치인들이 동창회에서 만나면 선배와 후배의 관계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한다.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책으로서 도입한 서양식
개인주의에 근거한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 보호제도의 성패 여부는 한국인이 견지하여온 중심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 결과를 미리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 속한 조직을 떠나지도 않으면서 남아서 외부에 대고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민주적 항의가 아니라
배신의 낙인으로 돌아온다. 허쉬만의 표현을 빌자면6) 싫으면 떠나는 이탈(exit)의 선택기회도 별로 없으면서 항의(voice)의 목소리도 쉽게
낼 수 없다. 그 결과는 조직의 공적 목표를 사적 이익 추구로 변환시켜 조직의 퇴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동창회 뿐 아니라 한국의 정당 조직에서도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는 현상들이다. 한 조직이 공동체의 따스함과 동시에 가혹한 ‘왕따’의 경험을 선사하는 두 얼굴의 형상을 한 것도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진보개혁의 어려움과 가능성
노무현 정부 4년의 공과에 대한 논란은 차고도
넘친다. 굳이 적시하지 않아도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보로부터는 얼치기 진보로 보수로부터는 얼토당토않게 친북 좌파로 비난받고 있다. 이
글은 노무현 정부 4년에 대한 공과를 평가할 적절한 자리도 아니고 의도도 없다. 그럼에도 왜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출연한 진보 정권이 이토록
사면초가로 박대를 당해야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부는
(그리고 그 연장에서 진보 진영은) 그 자신 위에서 언급한 중심적 가치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도 못하면서도 한국의 정치 문화에 깊숙하게 자리한
가치체계를 깨뜨리는 데 진력한 것이 어려움의 실체였다. 대안적 가치체계를 굳건하게 마련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왕왕 개혁의 삽질 소리가
드높을 때 스스로 발 딛고 서 있는 토대를 파헤쳐 허무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이는 마치 관료가 개혁의 주체가 되는 동시에 개혁의 당사자도
되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 하에서 관료 개혁의 어려움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물론 중심적 가치가 다 긍정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가끔씩 이중적이고 또한 다분히 부정적이다. 잘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천민자본주의의 발원지이다.
중앙으로의 집중은 희소자원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초창기의 긍정적 가치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된, 그러나 거스르기 힘든 관성이다. 국가의 보편적
존재감은 이제 더 이상 발전의 설계자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걸림돌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동시에 아직도 마땅하게 그 역할을
대신할 주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 기업은 탐욕스럽고 시민사회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 공사(公私) 구별을 통한 사회적 자본의 구축은 난망하면서도
동시에 폐쇄적 비민주성을 내장하고 있다. 허나 이러한 중심적 가치들은 싫건 좋건 엄존하는 힘이고 실체라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진보나 보수
모두 이러한 가치체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양 진영 간에 있어 중심적 가치에 함몰되어 있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종류의
차별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진보와 보수 양측에 대하여 이러한 무차별적 취급을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측면이 있다. 적어도 도덕의
잣대로만 치자면 진보는 보수에 비하여 우월성을 주장하기 쉬운 입지와 전력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도덕의 잣대 또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식하는 절벽 위에 서 있음이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이러한 중심적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보수의 경우는 중심적 가치에 편승해왔다. 이는 곧 중심적 가치의 부정적 측면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무시하였거나 한 발 더 나아가 이용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보수는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어 새로운 중심적 가치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중심적
가치의 부정적 측면들을 교정하는 데 게을렀다. 허쉬만이 적절히 지적하듯 보수의 세 가지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7) 첫째, 개혁을 해봐야
문제만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악화(惡化, perversity) 가설이다. 둘째, 개혁을 해봐야 세상 돌아가는 법칙에 어긋나니 소용없다는
무용(無用, futility) 가설이다. 셋째, 개혁을 하면 기왕에 이룩한 것마저 다 날려버린다는 위험(危險, jeopardy)가설이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부동산 정책, 국가 보안법, 사학법 개정, 교육 정책, 재벌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보수의 입장은 허쉬만이 지적한 세 가지
가설들의 특장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진보는 제 자신 중심적 가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중심적 가치의 부정적
측면을 교정하려는 노력보다는 의욕에 앞서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른바 중심적 가치의 리모델링보다는 중심적
가치의 재건축을 택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기본구도도 바꾸지 못하면서 동시에 대안제시의 활성화에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이른바 의도의 ‘진정성’이 시민사회적 동원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는 대통령의 파격적이고 독특한 언행
스타일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연유는 한국의 진보가 견지하고 있는 변화와 연속에 관한 인식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할
것이다. 개혁의 성공이 시민사회적 동원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깊은 속내는 결국 일반 국민들이 견지하고
있는 중심적 가치체계와의 괴리가 너무 컸음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곧, 한 국가/사회를 구성하는 변화와 연속에 관한
담론을 진보가 지극히 이분법적으로 해석하여 연속 아니면 변화로 해석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세상은 연속 아니면 변화라기보다는 연속적 변화 혹은
변화 속의 연속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진보의 귀에 서운하게 들리는 한 노(老)지식인의 발언, 즉 “한국의 지식인들은 어째서 성난 얼굴로 과거를
돌아보는 데만 그리 열중하는가?”라는 권태준의 충고8)는 반박하기보다는 오히려 충고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중간 결산해보면 진보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아무래도 보수보다는 진보의 전망이 밝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현실로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여러 통계라든가 혹은 현 정부에 대한 인기도 등과 대비되는 주장이다. 항용 일컫기를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실망하여 전반적인 여론이 보수로 회귀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특히 386 세대의 근간인 40대가 유연한 중도로 돌아서는 것을 그
근거로 들이민다. 그 결과 이들이 내세우는 암묵적 가설은 진보에 실망하면 보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 암묵적 가설에 설득을 당한 것인지 너도나도
중도라는 정체불명의 영역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행한 기왕의 논의를 연장해보자면 진보는 진보에 실망한다고 꼭 보수로(그리고 그
연장에서 중도로) 변하지 않는다. 보수가 보수에 실망한다고 쉽사리 진보가 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진보나 보수 모두 공유하는 중심적 가치의
영역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전망은 진보가 밝다. 왜냐하면 진보는 중심적 가치의 변혁과 개선 혹은 대안적 가치 추구에 대하여 보수보다
훨씬 진취적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여성, 환경, 인권, 문화 등의 새 영역에서 보수는 진보에 비하여 현저한 열세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가 이문열이 하였다는 “한국에서는 넘어져도 왼쪽으로 넘어져야 한다”는 불만 섞인 비아냥은 반만 진실이고 반은
과장이다. 진보가 보수의 불만을 살만큼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진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인 대다수는 전통적인 중심적
가치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에서는 과장이다. 하여 진보는 진보에 실망하면 굳이 보수로 회귀하지 않아도 또 다른 진보로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반면에 보수는 제 자신 스스로의 가치체계 영역 구축에 게을렀던 관계로(혹은 본질적으로 변화보다는 연속을 택하는
관성으로 인하여) 보수에 실망할 경우 진보에 비하여 선택지가 좁아진다. 속성상 진보가 보수로 기울기는 쉬워도 보수가 진보로 변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건대 보수가 보수에 실망하면 진보로의 변화보다는 불만스런 혹은 보다 수구적 보수로 회귀하기 십상이다. 군사정권 시절을 풍미하던 극우보수
인사들이 정치권에서 퇴출되지 않고 아직도 한 목소리하며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일 것이다. 물론 보수와 자유주의를 접목하였다는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라는 또 다른 선택 대안이 보수에게도 있지 않느냐는 반론의 목소리를 당연히 듣게 된다. 자세하게 그들의
주장을 일별하고 논할 자리는 아니다. 다만 ‘뉴’ 라이트가 ‘올드’ 라이트로부터 얼마나 자율적인지 그리고 그 연장에서 얼마나 중심적 가치관의
부정적 측면 개선에 진력하는지는 아직 의문시된다. 어느 진보적 논평자의 말대로 ‘뉴’를 강조하면 ‘라이트’가 약해지고 ‘라이트’를 강조하면
‘뉴’가 약해지는 내재적 모순이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진보에 비하여 취약한 것의 본질은 내적 모순뿐 아니라 과거 한국의 보수가 걸어온
전력(前歷)과도 무관치 않다. 즉, 보수는 스스로 힘들여 새로운 가치 영역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진보에 많은 영역을 선점(先占) 당하였을 뿐
아니라 (예를 들면, 환경, 여성, 인권 등) 그들이 과거에 별로 해보지 않은 게임의 룰에 적응하는 어려움 또한 크다 할 것이다. 빈민촌으로,
공장으로, 야학으로, 농촌으로 이른바 ‘하방(下方)’ 하였던 진보의 전력(前歷)은 확실히 시민사회의 동원능력과 침투에 있어 일부 언론과 재벌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민들이 집착하는 중심적 가치들에 그 역할을 의존하였던 보수보다 훨씬 현장감이 드높다. 이 점에 있어 한국의 보수는 맥거가
살펴본 미국의 신보수와 확연히 구별된다. 그들은 선거에서 패배하여도 요란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키친 테이블 혁명을 준비하였으며 선거에 이기고
나면 이슈 영역의 확장에 매진하였다. 한국의 보수는 비록 환경과 역사와 문화가 틀리지만 미국 신보수의 발흥으로부터 적잖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념적 성급함을 넘어서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적잖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진보(進步)는
진보(進步)하고 있지만 보수(保守)는 아직 보수(補修)해야만 한다는 진보에 대한 동정적 비판 그리고 보수에 대한 비판적 동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진보로부터 떠나는(아니 떠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어째서 그리 높던 진보에 대한 열정이 이리도 차게 식는가?
민주화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가? 아니면 노무현 정부의 성과에 실망한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인가? 이런 답변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쉽게 답하기 힘든 것이 현재의 일반적 분위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많은 피를 흘리고 애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무엇을
이루어주었는가?, 라는 질문은 드세지는 노조의 강경투쟁과 어려운 경제 여건 그리고 즐겁지만은 않은 현 정부의 결과물 등 앞에서 쉽게 긍정적
답변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쉽게 편들어 주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산재(散在)해 있다. 민주화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억눌렀던 권위주의적 지배에는 쉽사리 권위주의적 피로감을 보이지 않았는가? 한쪽이 1960년부터 1990년까지 30년의
지배였고, 다른 한쪽은 실제적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 합해야 10년의 지배이다. 노무현 정부에 실망하였다면 김대중이나 김영삼 정부의
말기에는 이런 증후군이 없었단 말인가?
한국 진보에 대한 동정적 비판 중에서 나의 귀를 잡아당기는 주장 중의 하나는 이론적
고담준론이나 학술적 논문이 아니라 도정일, 강준만 그리고 고종석 등 몇몇 자유주의들이 잡지며 신문 칼럼을 통하여 외치는 소리이다. 칼럼의 특성상
정교한 이론적 주장은 어렵다. 아마도 이것이 이들의 유리한 점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글이 가지는 장점은 진보의
취약점을 매우 예리하게 그리고 일반인의 정서에 걸맞게 짚어내는 현장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진보에 대한 뼈아픈 성찰적 조언이 도덕성과
이상주의적 보편성에 근거해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이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것은 흔히 보수나 진보가 스스로 빠지기 쉬운
자기정당화 과정(‘좀 피치 못하게 잘못이 있더라도 먹고살게 해준 것이 누구냐?’라든가 혹은 ‘우리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를 누가 뭐라는
거야?’라는 등의 의식 구조 말이다)에 동정적 비판을 가하여 이념적 균형감을 잡게 하는 데 있다. 특히, 이들이 지적하는 도덕과 양심의 문제는
정치적 이념의 향방을 떠나서 일반의 정서에 와 닿는 것이기에 그 균형추의 무게감이 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견해에
충분한 공감을 표하면서도 허나 내가 정작 하고픈 이야기는 이념적 균형추의 중요성을 넘어서 이념 논쟁의 저쪽, 즉 사람들의 마음속을 좀 넓은
시야에서 보자는 것이다. 이는 곧 내가 이 글의 앞쪽에서 던진 두 번째 의구심의 문제를 말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진보에 실망하여
보수로 돌아서거나 혹은 보수에 실망하여 더욱 극(極)보수화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진보나 보수와 같은 정치이념에 공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실망하여 그들의 사적 영역으로 조용하게 귀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진보/보수 논쟁에 있어 학계 혹은 언론이 던지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보다 중요한 질문은 ‘왜 사람들은 진보개혁에 실망하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은 왜
점점 더 공적인 일에 관심과 참여를 안 하는가?’일 것이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 모두에게 참으로 뼈아픈 질문이다. 누가 더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왜 모두에게 관심이 없어지는가의 문제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정치란 것이 만인의 술자리 안주는 될지언정 의미 있는 참여와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란 것이다.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렇다. 진보, 보수 모두 공적 영역에서 논의되는 정치적
이념의 조급성을 탈피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일반 국민의 사적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어쩌면 일반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실망감은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욕망은 꽃 피우나 소유는 시든다”는 프랑스 데카당 시인 보들레르의 말처럼 공적 참여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부터 우리는 사적 영역으로의 후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경제의 영역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지만 군사정권
시절과 달리 선거가 정치 영역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정통파 게임의 준거가 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20여 년 동안 이 일 저 일을 겪으며 서서히 공적 영역에 대한 관심을 줄여 나갔다. 그리고 공적 영역의 빈자리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범주를 넓혀가며 하나둘씩 차지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허쉬만의 표현을 빌자면 ‘이해관계(interest)’가 ‘열정(passion)’을
대체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9) “열정이 인간을 사악해지도록 부추기지만 이해관계에 얽매어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10)는
몽테스키외의 금언처럼 진보 보수 모두 열정을 식히고 차분하게 일반 국민들의 마음속으로 하방 할 일이다. 시민참여에 관하여 이것저것 공부하다 느낀
것과 나의 이러한 제안적 해석은 참으로 유사하다. 시민들은 철저하게 이해관계 중심으로 동원되고 움직이는데 시민단체는 여전히 열정으로만 일반
시민들을 대하려 한다는 이 간극에 참으로 난감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언제 다시 공적영역에의 열정을 되찾을까? 그건 나도 아직
모를 일이다. 혹시나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래 주석으로 한 권의 책을 권한다.11) 그리고 그 책이 바로 맥거의 책과 더불어 이
글을 쓰게 유인한 책이기도 함을 밝히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