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10시~17시

02) 325-7216

후원계좌(신한) 100-028-371614 (사)이한열기념
사업회


기념사업회 소식

어제 기념관에 온 학생이 쓴 글이에요~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0-10-25 00:00:00 조회 : 2246
SNS 공유  

이한열 기념관에 다녀온 소감

전동6학년 동설아




처음에는 조사를 해도 ‘이한열’이라는 분이 정확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잘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는 것을 보니 우리라가 정말 큰 성장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신 건 1980년대 였는데 참 그때의 생활과 정치를 들어보면 정말 옛날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느꼈던 것은 참 사람이 욕심이 많고 배우는 것이 힘 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뒤는 생략)



(추가 조사)

이한열 열사

1987년 6월 9일, 1,000여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국민평화대행진(6·10대회)을 하루 앞두고 이 대회에 출정하기 위한 연세인결의대회를 마친 뒤,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7월 5일 뇌 손상으로 인해 심폐기능이 정지됨으로써 결국 사망하였다





박종철고문 치사 사건

박종철의 친구가 시위를 하여 그친구가 어디있는지 알아보기위해 끌려간 박종철은 10시간이 지난뒤에 시체로 나왔다. 정부가 수사관에게 물었더니 책상을 탁치니 박종철이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진실은 이러하였다. 박종철의 시신을 조사해보니 가슴에 멍과 페에 물이차있었다라고 말하 였다. 그래서 박종철의 죽음은 고문에 의한 것임을 사람들은 확신하였다......

[출처] 이한열 기념관에 다녀온 후기 (작은역사학교 어깨동무) |작성자 00 새싹이00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