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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방문객 글입니다.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5-08-24 15:55:29 조회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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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비학교의 8월 22일 프로그램은 종일 현장체험학습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윤동주와 이한열을 만나고 오후에는 김주열을 비롯한 4.19 영령들을 만났습니다.


좋아하는 친구인 인문학 연구자 이하나선생님을 섭외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가지고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인문적 감수성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방식에 대해 청년인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이하나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한류 문화 예술의 자부심이 오랜 시간 동안 시대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실천해온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국가 주권을 빼앗겼던 시기의 청년들이 고민하고 실천한 것은 독립이었고, 그것이 그 시기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고 실천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윤동주와 윤동주의 시를 이야기했습니다. 세계 학생운동 역사상 한국의 학생운동은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 시작해서 그 정의감과 순수한 열정이 한국현대사의 독재정치에 대한 저항, 민주화 운동의 선구로 이어졌고 그것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고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를 이루게되는 기반이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이한열이 있었고, 87년의 청년 대학생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존경하는 선배인 이한열기념관 관장인 이경란선생님을 만난 우리 평화나비학교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이한열과 동시대를 살고, 이한열을 지키고, 이한열을 기억하고 이한열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이경란선생님 말씀에 소름돋는 감동을 느꼈답니다. 이한열, 그 이름만 들추어도 눈물이 나는 우리 세대의 기억을 더듬은 아이들은 100년전이든 2~30년전이든 과거라고 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옛일이었다고 여겼었는데, 역사가 현재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 일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독재자를 청년학생들과 민중의 힘으로 물러나게 한 4.19혁명, 군사정변으로 부정된 이후 역사적으로 폄하되었었지만 민주화를 통해 4.19영령들이 모셔진 곳은 이제 다행히 국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엄숙하고 경건하게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를 실감했습니다.


평화나비학교의 아이들이 윤동주, 김주열, 이한열이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순간, 발딛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나와 내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그들이 꾸었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