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에는 노수석열사의 15주기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노수석열사는 연세대 법학과 2학년이던 1996년 3월 29일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 및 국가 교육 재정 5% 확보 요구 집회에서 정권의 강경진압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모여 추모주간을 보냈습니다. 낮 12시 추모제엔 배은심 어머님과 우상호 이사가 참석하였고 저녁 7시 반 추모의 밤엔 이경란 사무국장이 참석하였습니다. 추모의 밤은 실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식전엔 추모 동영상이 상영되었고 노수석명의로 개설된 트위터에 올라온 답글을 영상으로 편집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인권재단 사람의 상임이사인 박내군님의 말씀도 들었고 현재 연대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노조 서경지부 연세대 분회의 청소노동자 대표이신 김경순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2003년에 노수석열사가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인정받으면서 국가로부터 받은 돈을 종자돈으로 하여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 나와 낮에 배은심 어머님이 요즘 학생들에게 이한열이나 노수석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노수석열사가 교육재정확보, 즉 등록금 문제로 싸운 것이지요. 96학번으로 그날 많이 울었다는 이수현님이 자신이 쓴 <미친등록금의 나라>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시 부모님들이 너무나 의연하셨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노수석의 아버님이 나오셔서 그때 분노하고 절규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하셨습니다, 극한을 넘어서면 모든 게 정지되나 보다 하시면서. 이렇게 기억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하셨습니다. 한열이 추모비에서 학생회관쪽으로 아래에 있는 노수석 추모비에 가서 헌화하는 것으로 추모의 밤을 마치니 7시 반에 시작된 행사가 10시가 넘었습니다. 노수석열사 추모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 다시는 열사 그 이름을 하나도 내어주지 않으리... 네, 다시는 열사가 생기지 않는 세상이 되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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