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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한열만화상 심사평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2-07-18 00:00:00 조회 : 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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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이한열 만화상 심사평을 다소 늦었지만 올립니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인 김형배 선생님이 요약 정리하신 글입니다. ---------------------------------------------------------------------------------------- 1. 처음 공모전인지 기대했던 것보다 응모작의 수가 적었다. 카툰 분야는 12명이 42편을 응모하였고, 이야기만화 분야는 28명이 29편을 응모하였다. 전체 참여인원은 40명이고, 전체편수는 71편이었다. 연령별로 카툰 분야는 대학생들이 응모하였다. 이야기만화 분야 역시 절반 이상 대학생들이 응모를 한 반면, 소속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17명이고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각각 1명씩 응모하였다. 2. 카툰 분야는 이야기만화 분야에 비해 대학의 전공수업 과제를 제출한 것처럼 완성도가 낮았다. 이런 원인은 카툰에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이 없는 탓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이야기만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카툰은 그 표현이 쉽지 않은 장르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갈등의 본질을 압축하여 한 칸에 형상화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과정을 요하기 때문이다. ‘우수상’으론 조선시대 수묵화를 패러디하여 물고기의 영혼을 연꽃으로 연결시키면서 환경문제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환기시킨 최다미의 <물고기의 넋>이 선정되었다. ‘가작’으로는, 최근 FTA협상과 구제역 파동 등으로 어려워진 농촌현실을 얼룩말이 되고 싶은 황소를 통해 가볍게 비튼 이수정의 <되고 싶은 것>과, 정리해고가 곧 죽음인 현실을 컨베이어벨트로 풍자한 김현국의 <정리해고>가 선정되었다. 장려상은 세 작품으로, 가족부양으로 고달픈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그린 이혜은의 <아버지>와, 조선시대 풍속화를 빌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노동자의 삶과 착취하는 기득권층을 대비시킨 김수희의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선정되었다. 또 유일하게 중학생 작품으로, 최근 학교폭력 문제에 대처하는 솜방망이 대책을 비꼰 송민주의 <솜방망이>가 격려의 의미로 선정되었다. 3. 이야기만화 분야는 응모작은 적었지만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많았고, 당선작 선정과정이 만만치 않을 정도로 고른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다.    응모작들의 작품의 주제와 소재 면에서 볼 때, <이한열 만화상>이 주는 상징적 의미와 부담감에서 벗어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졌다. 이한열 열사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청춘들의 소소한 일상적 고뇌와 사랑을 다룬다거나, 가족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작품, 사회현실을 은유적으로 풍자하는 내용이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을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당선작 반열에서 벗어난 작품들 역시 각각의 소재들이 의미가 있었지만, 이야기 전달력이 떨어진다든가 캐릭터들의 갈등 과정이 현실감 있게 형상화되지 못한 탓에 선정하기 어려웠다. 4. 처음 ‘우수상’ 후보로 올라간 작품은 문채린의 <자판기 아저씨>와 황혜순의 <촛불소녀>이다. <촛불소녀>의 경우, 고등학생으로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면서 스스로 주체로 서는 과정을 ‘숨쉬기 과정’과 연관시켜 표현한 작품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등장인물들의 나이와 상황에 맞게 밝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건강한 솔직함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심사위원 전체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대사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잘 표현하였으며,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고등학생다운 진솔한 시선과 진정성이 감동적이었다. 또 화면과 필치에서 드러나듯이 정성을 다해 그린 소박한 그림 자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우수상’으로 선정하기에는 자칫 <이한열 만화상>의 성격을 사회운동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아직 가능성이 더 큰 작가에게 더 좋은 작품을 바라는 기대와 격려의 차원에서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자판기 아저씨>의 경우, 현대사회의 일상적 감정소비 행태를 ‘자판기’라는 알레고리로 적절하게 형상화를 하였다, 비록 ‘자판기’라는 비유가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등장시킨 ‘어린 자아’와의 만남과 대립 과정, 현명하고 깔끔한 마무리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주며 작품에 무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림 형식이 다소 유럽풍의 이국적인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한 형상력과 스토리 전개의 역동성은 청년다운 패기와 실험적 태도로 이해되었으며, 고심 끝에 심사위원 전원일치의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5. 또 한 편의 ‘가작’ 후보로는 최지원 작, <할배의 수준>, 이재진의 <김치와 콩자반>, 우은지의 <가면 쓴 사람들>, 세 편이었다. <할배의 수준>은 집에서 기르는 늙은 개를 할배로 묘사하면서 독특한 감성을 보여주었고, <김치와 콩자반>은 어린 시절 소풍날 김밥도시락 대신 맨밥에 김치와 콩자반을 싸간 부끄러웠던 추억을 그리워하는 현재의 마음을 무난하게 형상화하였으며, <가면 쓴 사람>은 ‘가면’이란 알레고리로 획일화 되어가는 사회와 익명성이 갖는 폭력성을 묘사하려 하였다. <할배의 수준>에서는 ‘할배’가 개처럼 혓바닥으로 사람의 발바닥을 핥는다든가 밥상 밑에 웅크려있는 이미지에서 느껴지듯 낯설고 소름이 돋는 듯한 정서를 사실적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정서와 감성은 어떤 만화에서도 볼 수 없었으며 낯설면서도 강렬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독특한 정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처럼 촉각적이면서 왠지 불편하고 낯선 정서 속에서 ‘애완동물’, 즉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일방적으로 애착, 소유하는 동물, 혹은 사람에 대한 비판적 반성, 최근 다각화 되고 있는 가족 형식의 문제. 그리고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노인문제, 나아가 가정 내 성폭력의 문제까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주제를 가진 작품이었다. <이한열 만화상>이 ‘청년만화’를 표방한다고 할 때, 이처럼 다소 도발적이지만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감성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고 최종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6. <김치와 콩자반>은 따뜻한 정서가 잘 전달되는 반면 이미 결말을 예상할 만큼 안정적으로 스토리를 풀어간 점에서, <가면 쓴 사람>은 익히 알고 있는 우화의 변형이라는 진부함과 ‘가면’이란 알레고리가 현실과의 연관성에서 일견 모호하면서도 도식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장려상’에 그치고 말았다.   이밖에도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는 딸과 아버지의 관계가 추억의 사진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훈훈한 이야기를 그린 김현정의 <오래된 필름>, 가족 간에서 소통이 두절되는 아버지의 소외를 숲으로 묘사한 조혜림의 <아빠숲>, 입대를 눈앞에 두고 서먹해진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억압적인 군생활 속에서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임재용의 <2009년 4월의 그리움>,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감정을 눈치 채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린 김균태의 <어울리는 남녀>, 생일날 구멍이 난 양말로 더욱 우울한 생일을 보내는 사춘기 소녀의 일상을 그려낸 남숙현의 <엄마>, 이한열 열사의 시대적 현실과 꿈을 날고 싶어 하는 새와의 대화를 통해 4칸 만화 연작형식으로 풀어낸 김현선의 <한열을 만난 날> 등, 모두 8편이 ‘장려상’으로 선정되었다. 7. 심사에 앞서 심사위원들은 <이한열 만화상>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어떤 심사기준을 가져야 하는가를 정하기 위해 토론하였다. 이한열열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만화가 갖는 장르적 특성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입장을 정하고 심사에 임했다. 심사 과정과 심사 결과에서 잘 나타나듯이 인간과 삶, 그리고 세상에 대한 폭넓은 시선과 주제의식은 물론, 만화라는 장르적 특성과 향후 <이한열 만화상>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역할에 비추어 진부하지 않으면서 참신한 만화적 형상력이 우선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더러 이한열열사의 의미를 부각하는 만화들이 있었지만 진부한 형식을 취한 경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양한 소재를 통해 현실을 잘 반영함으로써 독자들의 인식을 새롭게 환기시키거나, 새로운 감성을 표현하려 노력한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이한열 만화상>은 만화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역할과 함께 젊은 만화가들이 만화작가로 인정받는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 다음 <이한열 만화상>의 공모방식에 대해서는 큰 주제를 제시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만화작가들이 <이한열 만화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주제에 접근하여 형상화함으로써 만화가 갖는 사회적 역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주제가 있는 공모는 도리어 나름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만화작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반대의견도 있었다. 추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보다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나가기로 하였다. 이한열 열사의 뜻을 기리고 만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고견이 모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