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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학기 이한열 장학금 수여 학생, 그 다섯 번째 글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2-09-10 00:00:00 조회 :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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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로운 한주 이한열 장학생 글과 함께해보아요~ 다섯번 째 글 입니다! 개인적인 신상은 공개하지 않기 위해서, 신청서에서 신분이 드러나는 글은 제외하였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열심히 살아보아용~>< 1. 이한열 장학회의 선발 기준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신 분의 가족, 사회적 약자, 깨어있는 시민, 사회적 기업에 대한 구상이 있는 자입니다. 자신에게 해당하는 부분을 적어 주십시오. 하나 이상 해당 하는 경우 모두 적어 주십시오. 저는 우리나라의 전통 성악인 正歌를 전공으로 하는 학생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국악고를 가지 못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정가를 배워 2011년에 국악의 명문 용인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정가 외에 타악, 판소리, 민요, 송서.율창도 배우고 있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아직 대학재학중이라 제가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한 바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만, 같이 국악을 하는 어머니가 용인 지역에서 주민 및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공연을 할 때 고수로 참여한 일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순수한 사회봉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의 전통고취대의 고수로 참여하여 우리나라를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는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들을 세계에 알릴 포부를 꿈꾸고 있으며, 이 꿈을 이루기 매일같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 음악이 서양음악에 비해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무조건 서양음악을 따라가기보다는 먼저 우리 전통음률을 찾아 계승 발전시키고, 그 옛 음률의 풍류와 미를 찾아 현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우리 고유의 정악, 민속악, 무용, 성악 등의 장점을 잘 찾아내어 보다 세련되고 보편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국악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저의 전공 분야에서만 바라본 것이지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건강한 사회는 이런 각자가 맡은 작은 일부터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한열장학금을 받는다면, 이는 우리 국악, 그리고 국악 중에서도 더욱 소외되어 있는 저의 전공인 정가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데 큰 자극이 되리라 믿습니다. 2. 이한열 열사, 또는 이한열 열사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 아는 대로 기술하십시오. 이한열 열사에 대해 제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이번에 처음 검색하여 이한열 열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던 중, 시위 학생들과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공방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은 뒤 1987년 7월 5일 병원에서 뇌손상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에게 더욱 깊은 불신감을 심어주었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 나갔다. 이어 전국에서 하루 100만여 명의 민중이 시위를 벌이게 되는 6월 항쟁이 정점에 이르게 되자, 전두환 정권은 시국 수습을 위해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로 하여금 대통령 선거의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는데, 이것이 6. 29선언이다.” 24년 전 이한열 열사가 저보다 조금 더 먹은 나이에 반독재투쟁에 나섰고, 또 그 일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습니다. 중고등학교 사회나 역사 시간에 어느 선생님도 이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런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만약 제가 그 당시 대학생이라면 저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제 전공이 예능계라 아무래도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둔감하고, 또 제 주변도 마찬가지입니다. 24년 전과 같은 상황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은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일을 잘 생각해 보고, 또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관심을 보이고, 투표 열심히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24년 전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민주화운동으로 숨진 청춘들에 대한 보답이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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