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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한열기념
사업회
전시소개 |
가슴으로 만나는 기억 속의 노동자
지난 5년 동안 이한열기념관에서 열린 《보고 싶은 얼굴》 전이 전태일기념관에 초대되었다. 처음에 《보고 싶은 얼굴》 전을 기획하게 된 것은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 과정에서 돌아가신 다른 분들도 함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돌아가신 분들은 6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름도 얼굴도 남김없이 떠나간 이들을 소환하는 전시를 올리며 우리는 이들의 반짝였던 젊음을 보았으며 용기를 배웠다. 올해는 전태일이 잠든 세상을 자명종처럼 깨우고 떠난 지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1970년 전태일의 죽음으로 학생과 지식인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청계천으로, 구로공단으로 달려갔다.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만남으로 인해 변화가 물결 퍼지듯 번져나갔다. 이 전시는 전태일 이후 불꽃 튀듯 일어났던 ‘만남’에 대한 전시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는 공간인 만큼, 그동안 이한열기념관에서 전시했던 30여 명의 인물 가운데 노동운동과 관련된 인물 13명을 모셨다. 이 인물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 자체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가 보인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전태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기별로 나누어 전시를 구획했다. 첫 번째 시기인 1960~70년대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맥이 끊겼던 노동운동이 다시 점화되는 시기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을 교육하고 노동조합운동을 격려했던 조지송 목사, 유신 시대 종말을 이끈 YH 여성 노동자 김경숙, 80년대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된 원풍모방 노동조합운동의 주역 이옥순 노동자, 노동자들을 위한 들불야학을 설립한 박기순 강학(강사)를 조명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섬유·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기독교계와 대학생들이 야학운동 등으로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80~90년대. 1987년 유월민주항쟁이 휩쓸고 지나간 여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이때 가슴에 최루탄을 맞고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숨졌다. 남성노동자 중심의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쟁의와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학생운동 출신 대학생들이 대규모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공장에 취직하기도 했다. 강민호는 1990년 공장에 취직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사고로 운명했다. 박승희 학생은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하였다. 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김경화 작가는 대학교 졸업 후 노동자가 되기 위해 봉제 공장에 들어가 재봉 기술을 연마했다. 이렇듯 노동자와 대학생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갔음을 볼 수 있다. 1991년 보세공장 노동자 권미경은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고 미경이다”라는 글을 남기고 숨졌다. 참교육을 위해 전국교사노동조합 활동을 벌였던 배주영 선생도 노동자이기에 이 전시에 모셨다.
세 번째 시기는 2000년 이후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해왔지만, 노동자들은 지금도 50년 전 전태일이 분신했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났고 특히 여성과 청년, 소규모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산재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중소병원에서 노동조합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이정미 간호사, 삼성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조합을 설립하던 중 숨진 최종범 노동자, 알바노조에서 최저임금 1만 원, 기본소득 운동을 벌인 시민활동가 권문석, 계약직 방송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적인 노동조건과 멸시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한빛 PD가 이 시대 노동자들의 얼굴을 대변하고 있다. 노동자의 죽음은 대학생의 죽음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들은 기억되기 힘들다. 시각예술 작가들은 여기 모신 한 분 한 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형상화하였다.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소환된 기억 속의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얼굴들과 만날 수 있는 전시이길 염원한다.
2020년 4월 이한열기념관 학예연구실장 문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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