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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한열기념
사업회
전시소개 |
2017년 <보고 싶은 얼굴전> 도록을 위해 김준기 관장님이 평론 글을 써 주셨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도록은 내용이 충실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요. 여섯 분의 열사들의 삶과 사진, 유물을 정리하여 그 분들에 대한 기록을 충실히 남기고자 합니다. 많은 열사 분들이 제대로 된 기록이나 책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시거든요. 또 작업에 임하셨던 작가님들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영상을 찍고 심층 인터뷰를 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고뇌와 작품에 스며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을 쏟다보니 도록을 만드는 일이 장난이 아니랍니다. ㅠㅠ 도록은 11월 중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전시 놓치지 말고 보러 오세요~~ 바쁘신 와중에 좋은 글 써 주신 김준기 관장님 고맙습니다. (원고 독촉하느라 애 많이 먹었습니다! ㅎㅎ)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소환하는 예술헌화
예술은 어떤 쓸모를 갖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술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술은 유용성과 결별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심미(審美)의 세계’라는 편견 때문이다. 근대사회가 쌓아놓은 예술의 아성은 바로 이 독자적 자율성의 기반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근대주의예술이 결과한 것은 자율적 주체로서의 예술이 사회적 맥락을 상실한 채 고립되는 예술의 소외현상이었다. 이러한 예술과 사회의 탈접점 현상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변혁기 이후의 일이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근대주의예술의 아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당대의 정치적 비판과 사회적 참여를 포함한 것이어서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정치적 민주화운동과 사회적 계급투쟁의 거대한 흐름과 동행함으로써 예술의 자율성과 유용성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탈접점의 예술을 접점의 예술로 전환하고 나아가 예술과 사회의 교집합 영역을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이다. 이한열기념관의 연례전으로 자리 잡은 <보고 싶은 얼굴>은 이렇듯 ‘열사의 초상’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예술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섯 예술가들이 여섯 열사들을 새로 만났다. 유가족과 농민회, 노동조합 등 여러 주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창작행위가 예술의 장 바깥에서 사회적 공론장의 일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었다. 이들은 자신의 예술노동을 애도와 추념, 나아가 기억투쟁의 장에 흔쾌히 내놓았다. 열사에 대한 애도는 가족이나 지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열사를 향한 추념은 애도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열사에 대해 충분하게 애도하지 못했다. 애도의 부족은 개인과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역사의 뒤안길 망각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 전시에서 담아내고 있는 열사들은 애도의 대상들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그이들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열사의 반열위로 모셨다. 정치적 윤리의식에 입각해 생사의 경계를 넘은 이들에게 우리는 마음으로 애도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그들을 떠나보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전시는 열사들에 대한 애도는 물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감성적 공론장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 전시가 열사에 대한 애도와 추념에 함몰하여 엄숙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최대한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을 혼융하여 매력적인 상징언어로 열사의 모습을 담아냈다. 페미니즘 문학과 미술의 장에서 만났던 고정희와 윤석남이 만났다. 1980년대의 인연이 30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리운 얼굴로 다시 떠올랐다. 나규환은 대우조선소 노동자 이석규와 연세대 학생 이한열을 만나게 했다. 1987년과 최루탄이라 단어를 공유한 두 사람의 모습은 청년 그 자체다. 한복 천에 재봉질로 만든 김경화의 작품은 여성적 생활정서를 바탕으로 강경대 시국에 돌아간 박승희에 헌화한다. 등 뒤에서 말없이 따라가는 정상현의 카메라는 보건의료노조 이정미의 헌신적인 열정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는 따뜻한 응시의 시선을 담는다. 박불똥의 콜라주 헌화는 인간의 삶을 유린하는 전쟁의 광기에 맞서 평화인권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의정부 지역활동가 제종철을 추념한다. 백남기의 미소에 주목한 김병화는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의 모습을 한없이 부드럽고 인자한 소조작품에 담아 기념비적인 님의 미소를 빚었다. 이한열기념관의 예술헌화는 이렇듯 풍부한 감성으로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고 재생산하며 시대적 특수성을 우주적 보편성으로 승화하고 있다.
김준기 gimjungi 제주도미술관 관장 Director of Jeju Museum of Art, 미술평론가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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