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거리
하 성 훈
1
그날, 마른 활엽수 잎들이 부스럭거리며
내내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거리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경적을 내지 않는 자동차들,
그리고 낯선 얼굴들이 빼곡 들어찬 거리 위에서
가을은 몽환의 저녁을 펼칠 태세였다
이 거리에도
옛날엔 숱한 제후와 병정들이 말굽으로 내달렸을 터인데
대관식처럼 빛나던 위엄은 이제 어디로 갔나
신성로마의 칼이 결국에는
아주 허망하게 부러지고
그 칼을 장사(葬事)한 지도 오래되어서인지,
길을 가고 있는 젊은이들은
궁정을 거니는 듯 자유를 안고 있다
피로 거머쥔 선거권을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랑스레 한번 보여주려는 듯이,
거리의 사람들은 자유와 사랑을 사용설명서대로
능숙히 쓰고 있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자유하게 했고, 사랑을 할 수 있게 했을까
2
사랑의 본질이란
거리의 창가 화분마다 핀 꽃이건만,
사랑을 잃은 자들은 외로움에 떨고 있으니
그걸 어느 누가 알 건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또 다른 것을 제한할 수 있는지
저 알프스 산정들에게 물어나 보라,
어림도 없는 일이다
거리를 다니는 모든 자들이
삶에 열광하거나 절망하고, 어떤 이들은
사랑에 깊이 빠져 있기에, 이 거리의 순례마저
나는 쉬이 끝낼 수 없다
라인강 물이 끓어올라 거리를 덮친다 해도, 운명이 나를
밀치고 간다 해도, 사랑은 원래 우리를
신명나게 춤추도록 하는 법이다
이 거리에서 만난 여인들의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의 그윽함,
낯선 목로주점과 그 잔의 향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리히텐슈타인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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