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 봐,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올해 응모작들 중 하나인 <Ruin his day>에서 인용한 폴 베를렌의 시 <하늘은 지붕 너머로>의 일부다. 지난해보다 부쩍 늘어난 올해 응모작들의 특징을 한 낱말로 정리하자면 ‘자화상’. ‘나’의 자화상의 ‘너’의 자화상이 되기 위해 보편성을 획득하기란 그런데 의외로 쉽지 않다. 나의 이야기가 곧 너의 이야기가 되기란. 울고 있는 ‘너’가, 울고 있는 ‘모든 너’가 되기란.
<자유로운 강철>는 어느 정도 소설의 꼴을 갖춘 작품이었지만, 당선작으로 고려하기에는 치명적이 단점이 많았다. 불안정한 문장들과 설익은 인물의 형상화,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야기 전개 등등. 하지만 소설이라는 기묘한 그릇 속에 자신만의 ‘그 무엇’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욕구와 열정만은 뜨거운 작품이어서 귀하게 읽혔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듯 써내려간 <Ruin his day>는 우선 문장이 안정적이었다.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고백하듯 문장으로 옮기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툭툭 내뱉은 의식의 파편들을 하나로 모아주기에 주제가 너무 흐릿하고 단순했다. 문장들이 좀 더 철학적이고, 좀 더 문학적으로 승화되었더라면 훨씬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을 두고두고 주었다.
응모작들 중 내가 끝까지 주목한 작품은 <강물이 흘러가는 곳>.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한 여자가 왔고, 마치 그 여자가 부른 것처럼 곧 그 뒤를 이어 한 남자가 왔다.” 아날로그적인 공간인 ‘강’을 배경으로, 남녀의 인연과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한 마디로 은은한 고전미가 넘쳤다.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상투적인 주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흥미를 갖고 이 작품을 읽은 데는, 나직이 속삭이는 듯한 문장이 큰 몫을 했다. 호수에 이는 물결처럼 작품 전체에 잔잔하게 흐르는 분위기도. 습작 시기를 꽤 성실히 걸어온 분의 작품임은 분명하다는 믿음을 주었다. 군데군데 통속적으로 읽히는 대목들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단편소설의 기본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어 기꺼이 당선작으로 올린다. 당선자께는 축하를, 모든 응모자들께는 진심어린 응원을 전한다.
(김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