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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문학상 수상작

2013년 이한열문학상 소설부문 - 김희철, <초상>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12-12 00:00:00 조회 : 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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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김 희 철

 

 

나는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지고 싶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눕는다.

 

어두웠다. 탁 막힌 시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눈앞을 반짝이며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의사는 노안으로 눈의 세포들이 죽어서 각막 위를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계속 있다 보면 눈 위에 떠다니는 죽은 세포들이 폐기된 위성처럼 보였다. 언제 지구로 추락할지 모르는 그런 위성처럼 나는 전원이 나갔는지 모르겠다. 눈을 감고 있는 건지, 그저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건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나도 조만간 이 넒은 어둠 속에서 부유물처럼 떠다녀야만 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이 들어왔다.

 

가족들에게 들릴까 싶어 슬금슬금 밖으로 기어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매만졌다. 관자놀이를 덮은 피부는 오래된 나무껍질 같았다. 매번 잠이 쏟아질 때마다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문대는 버릇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꾹 누를 때마다 피가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머리 표피부터 속까지 모두 뜨겁다. 노폐물이 가득 쌓인 머릿속 혈관 탓이다. 이 나이가 되면 탓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연다. 눈이 부셔온다. 아마 천국에 가면 이럴까. 사선死線에서 서서히 눈을 감고, 그러다 눈을 떠보면 눈부신 광경이 펼쳐져 있는 그런 죽음. 나는 천국의 문을 여는 것처럼 냉장고 손잡이를 감싸 안았다. 그러나 나는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다. 믿는 종교도 없었다. 그럴싸하게 선의를 베풀며 살지도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냉장고에 넣은 손에는 맥주 한 캔이 들려 나왔다. 차가운 맥주 캔을 볼에 대본다. 비릿한 쇳내와 캔에 스며든 밑반찬 냄새가 맡아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것은 후각뿐이었다. 눈은 점점 감기는데, 코는 속옷에 젖은 소변 지린내가 왈칵 느껴질 정도로 게걸스러워졌다. 이게 지금의 나인가…?

낡은 연립주택에 몸을 뉘인지 어느덧 수십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수압이 낮아 투정거리는 딸이나 아파트로 이사 가자는 아내와 다르게, 나는 요새 들어 너무나도 이곳이 편하다. 아니 새롭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집보다 서署 소파에 지낸 세월 때문인 건가. 요새는 근무여건도 나아졌다. 서署에서는 젊은 순경들이 인원확충으로 들어와 일하기가 한결 좋았다. 나이든 경사나 경위는 퇴직했고 그만큼 바뀌었다. 하지만 젊은 순경들이 알까. 장기농성에 들어간 시위대와 함께 몇 달간을 농성장에서 보내다 집에 돌아가는 그 기분을. 분명 농성장을 봉쇄한 경력警力뿐만이 느끼는 기분이 아닐 것이다. 시위대든 뭐든, 모두들 그랬다. 고개를 돌려 서재를 돌아본다. 등 뒤에는 휑한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냉장고 손잡이를 놓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말투가 조금 어눌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 어디 아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집을 나서다 문이 닫힌 딸의 방을 흘겨보았다. 애 좀 깨워서 학교 보내. 부엌에서 아내가 현관문에 내려선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휴강이래요. 나는 먼지가 낀 단화 콕을 발로 문대었다. 그놈의 대학은 무슨 허구한 날 휴강 아니면 엠티래.

성적이 좋지 못한 딸은 그나마 수도권 대학에 들어갔다. 내심 내 눈치를 살피던 딸은 입학원서를 내러 가기 전에 내게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편입할게요. 차 시동 거는 소리에 딸애 말이 조용히 묻혔다. 내비게이션 안내음이 물었다. 경로를 선택해주십시오. 그래… 네가 선택한 거니까…

내 인생에서 선택이 있었을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은 있었을지언정, 여섯 명의 동생을 둔 내게 자의적인 선택이란 없었다. 읍사무소 계원이었던 아버지는 집에서 삼십 리 떨어진 읍사무소 관서에서 삶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당직을 서던 날, 하필이면 6.25 때도 건재했다던 관서가 무너져버렸을까.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쥐꼬리만 한 위로금으로 먹성 좋은 일곱 자식을 키워야 했고, 스무 살이 된 나는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입을 줄이기 위해 군대에 입대했는데, 왜 하필이면 전경으로 착출이 되었는지. 어쩌다보니, 나는 전역 후 곧장 순경 시험을 봐서 경찰이 되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시간 때, 파출소 앞은 부산스럽다. 밤새 주취자에게 시달린 경관들이 교대자에게 인계를 하고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헤어졌다. 오늘 같은 조로 묶여 순찰을 다닐 경관은 박 경사였다. 원래는 경위였는데,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려서 계급이 강등되었다. 보통은 발령대기나 감봉 정도로 끝나는데, 시범케이스로 당한 것이다. 나이 때는 나랑 엇비슷했고, 이곳으로 전근 온 것은 일주일 전쯤이었다. 옆 관내 서署에서 내근했었는데, 번화가 옆에 딸린 이곳으로 전근까지 온 것을 보면, 운이 없거나 빽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박 경사가 주섬주섬 장구류를 챙기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내일은 누구랑 같이 순찰을 돌지 생각해보니 아마도 정 경위와 같은 조였다. 정년퇴직이 일 년 정도 남은 사람이었는데, 매부리처럼 코가 길쭉해서 젊은 순경들이나 경찰대 출신 경위들이 매부리 양반이라 부르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깐깐해서 나이 든 나조차 비위를 맞추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순찰조에 요새 계속 나이든 사람들만 따로 묶이는 것 같았다. 갓 경위를 단 팀장이 말하길,그게 덜 불편할 것 같아서요, 였다. 덜 불편하다니. 누가? 젊은 너희가? 아니면 우리들이? 안녕하십니까. 박 경사의 입안이 말랐는지 단내가 났다. 남으라고 남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밀려난다.

 

어디 나뿐인가, 싶지만

 

둘이서 아무 말도 없다. 순찰차 안은 무전 소리와 라디오 소리만 교차하였다. 이렇게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 전단지와 구토물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먹자골목을 한 바퀴 돌고 골목 모퉁이에 순찰차를 세워두었다.

자꾸만 그 일이 생각이 났다. 경찰학교 동기인 승철의 부음 말이다. 그와 같은 순찰조였던 경관이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순찰차를 비웠던 때에,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다.

 

 

무의식중에 매만진 관자놀이가 따끔했다.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모인 동기들은 생각 외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젊을 때 말고는 서로 자주 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승철의 자살 사유는 대단치 않았다. 평소 우울 증세를 겪고 있었다는 가족의 진술에 따라 사건은 일단락될 것 같았다.

만나는 동기마다 식어빠진 땀 냄새가 맡아졌다. 날씨가 습해서 그런지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건강이 최고여. 누군가 말했다. 퇴직한 사람 있는감?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느그들은 언제쯤 퇴직할 건데? 누군가 또 말했다. 늙었으니까 쉬어야지. 이 짓거리 언제까지 하나 몰라.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어 셔터음을 냈다. 팡하고 울리는 셔터음이 못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귓가에 아려왔다.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결국, 다들 자리를 일어섰다.

 

 

*

 

 

집으로 퇴근하니, 아내는 심야기도회를 나갔고 딸애는 방에 없었다. 둘 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대충 씻고 거실에 앉아 티비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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