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이한열장학생 학생의 글 中...
" 아버지는 1년 동안 아프시다 결국 돌아가셔서 모란공원에 있는 민주열사묘역이란 곳에 묻히셨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해마다 아버지의 기일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하셨던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통일운동이니 기독교사회운동이니 하는 말들을 듣기는 했지만 그러한 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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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추모집에서 박형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동지들이 해외로, 기업으로, 농촌으로 혹은, 山中修行으로 뿔뿔이 흩어져간 그 빈자리를 박기상은 혼자서 지켜냈다. 1980년 신군부 폭력 통치의 출발점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민중승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싸움과 희생의 현장에 그는 말없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이제 저도 아버지가 학생운동에 뛰어드신 그 나이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일생 무엇에 헌신하며 살아갈지, 또한 그 헌신할 힘을 어디서 얻어야 할지를 아버지께 늘 여쭤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