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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한열기념
사업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협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누나 셋에 이어 태어난 첫 아들로 부모님의 사랑 듬뿍 받으나 응석꾸러기가 아닌, 순하고 조숙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학업성적이 뛰어났으나 공부에만 매달리는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문학을 사랑해 많은 책을 읽고 시를 썼다. 그림도 썩 잘 그렸다.
재수를 해서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후 ‘사회’를 만난다. 광주민주항쟁을 알게 되고 괴로워했고, 군부독재와 민주주의의 탄압에 분노했다.
자신의 고민을 글과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만화 동아리 활동을 했고, 더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으나,
또한 섣부르게 나서는 대신 조심스럽고 진중했다. 솔직한 사람이었다. 때로 무력이 동원되는 시위가 두렵다고도 했다.
그래도 앞에 서야만 할 때는 용기와 의무감을 갖고 나섰다. 몸 상태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무감 때문에 시위대 맨 앞줄에 나섰던 87년 6월 9일, 직선으로 날아온 최루탄이 그의 뒷머리를 때렸다.
27일 간 사경을 헤맸다. 많은 이가 그로 인해 울었고, 그로 인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런 마음, 그런 움직임이 모여 그해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혼자 먼 길을 떠났다. 7월 5일 새벽 2시 5분. 향년 22세. 나흘 뒤 그가 장지인 광주로 향하는 길에는 160만 국민이 함께했다. 짧지만 빛났던 그의 영혼이 담긴 몸은 망월동 5.18 묘역에 뉘어 긴 안식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