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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유고 글

준열에게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16 00:00:00 조회 : 3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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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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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안경테를 두른 미쳐가는 놈이 나의 날을 기뻐 보내며 한 마디 소식을

전한다.

.

비록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오후에 집에 와 보니 너의 소식을 전하는 아주

머니가 나를 맞아주셨다.

.

오늘 아침 나의 존재가 두려워 눈물 흘리던 생각을 하니, 잠시나마 너희들의

존재를 망각한 내 자신이 더욱 슬퍼보였다.

 

오후에 나가 친구들과 생일 축하파티를 벌였다. Love like a fire (라이터 )를

선물로 받고, 한 권의 소설책과 한 권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로 진창 헛소리를 해대며 웃고 즐겼지만, 너희들 생각

을 하니 서러움이 울컥 치솟았다.

작년 오늘이었지. 첫 담매 맛을 알며, Soper 다방에서 너희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던 날이.

하지만 그것들은 막연히 그리움으로밖에 남지 않았냐는 생각에 낸 자신이

너무 미웠다. 집에 내려가고 싶었는데‥‥

그 동안 무얼 하면서 지냈는지 공금하다. 나는 그 후로(광주 내려간 후로)

사회과학 공부, 몰래바이트, 성경공부, 『영어순해』를 하며 지냈다. 한꺼번에

네 가지를 추구한 것이, 더위는 이겨낼 수 있었지만, 진정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고통을 느낀다. 여기 친구들은 내가 너무 욕심이 많다고

한다. 나도 그 부분은 인정을 하지만, 나의 그런 마음은 어찌할 수 없구나. 너

는 어떻게 생각하니? 조언을 듣고 싶다. 내가 이곳 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쉬

운 부분이 너와 그때그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4년 동안 같이

했던 너를 멀리 두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허전한 마음 억누를 수 없다.

다음 주부터 개강이구나. 8월 마지막 날들을(30일, 31일) 여행하면서 보내련다.

강원도 화진포 쪽으로 떠나려고 한다.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다.

나름대로 정리를 하며 2학기를 맞고 싶다.

준열아! 나의 몸은 날마다 한 잔의 술로 무너져 내리고, 나의 머리는 하얀 연

기 속에서 해부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으로 해서 나의 마음이 참 진리를 찾고, 그로 인하여 충만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이련다. 점점 정신이 몽롱해

진다. 과음에 나를 이길 수 없구나. 방학 동안 너로부터 한번의 소식이 없었던

것을 섭섭히 생각했지만, 오늘 너의 소식을 듣고 모든 걸 잊고 싶다. 정말 고

맙다.

나는 솔직하고 싶다. 이 세상이 나를 배반하고, 나를 죽이려·해도 나는 결코

이 세상을 경별하지 않을 터이다. -

준열아!

각자가 추구하는 것에 대한 방법이 다를지라도, 그 추구함은 모두 동일하다

는 걸 믿는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적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요즘 인간적이란

무엇인가라는 테마로 생각하고 있다. 정리되는 대로 너에게 소식 전하겠다.

그럼 너의 2학기 생활이 충만하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려 한다. 상현, 정식에

게도 안부 전하고, 어머님께 나의 살아있음을 전해주길 바란다.

안녕.

 

1986.8.30.01 : 05

스무번째 생일을 기리며,

한열 씀.

 

* 영아씨에게 소식 전하기 바람. 추석 때 내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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