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분단 42년 피맺힌 오월
80년 5월 18일. 망월동 공원묘지 303호실에서.
오늘 정오, 5월의 광주가 백양로에서 울렸다.
도서관 위의 하늘은 파란색 위에 최루가스를 덮어놓은 것처럼 흐므레했고, 5월의
핏빛은 내 마음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방금 먹을 김치찌개로 포만감을 느끼며, 한 대의 담배는 유일한 미(味)였다.
오늘, 또다시 생각한다. 나의 어린 날의 추억, 피의 항쟁이 끝난 후 6월 초순, 아
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자연을 만끽했고 고풍의 문화재에 심취했다.
친구들과 찍은 몇 장의 사진이 슬라이드로 흐르고, 사회의 외곽지대에서, 무풍지
대에서 스스로 망각한 채 살아왔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하여, 오늘은 다시 살아나는 날, 내가 우리가 되는 날이어야 한다.
역사의 무풍지대에서 살아져 온 오늘이 나의 삶이었을까? 한 편의 이야기를 들
으면서, 역경, 이해하지 못하는 심정. 왜일까 하는 궁금증, 다시 나의 행동을 고찰
하는 묵묵함이 나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외롭게 보이는 한 마리의 토끼, 사막지대에서 벗어난 듯한 한 마리의 사슴, 도시
의 사냥꾼이고 싶다. 내 구미에 맞게 요리하고 싶다.
이것은 정신 살육인 것이다. 내가 제물이 되어서 인간들이 소외당하지 않은 채
살아가게 하고 싶다. 인육(人肉)의 고스름함을 원시적 선조들의 미각(味)으로 돌리
는 것은 자기배반일 것이다.
인육이 나를 부른다. 사람냄새가 싫어지는 오늘, 최루가스로 얼룩진 듯한 저 하
늘 위에라도 오르고 싶다.
인간의 냄새는 피의 냄새.
우린 너의 피를 갉아먹는 흡혈귀이다.
심장에 독수가 뻗힌 외로운 흡혈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