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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마신 날 아침에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11:54:41 조회 : 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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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마신 날 아침에

 

우리는 왜 술을 마셔야 할까?

술 권하는 사회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이고 내 자신이 삶에 회의를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잊고 싶어서, 비뚤어진 세상에 눈을 맞추기 위해서 반강제적으로 쓰디쓴 술잔을 들이켜야 한다. 소주가 달다면 이미 그 속에 스며든 기성세대가 아닐까? 타협을 거부하고 진리만을 위해 살고 싶다. 하지만 일상 내뱉은 무수한 입놀림이 자기 스스로를 배반할 때 잠을 못 이루는 회한의 한밤을 지새울 것이다. 하지만 술기운은 나의 몸과 정신을 빼앗고, 꿈도 없는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린다.

아침에 밝은 태양을 눈부시도록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새롭고, 밝고, 환하고, 웃음만이 존재할 것 같은 하루를 설계한다. 하지만 운동화 위로 구토한 배설물의 흔적을 바라볼 때 잠시 모든 것을 잊었던 그 순간을 되찾고 싶어 한다. 서러움,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서럽게 한다. 그들이 진정 나에게 미소를 보낼지라도, 그것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든 이 사회가 더욱 서럽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마신 한 잔의 술은 지적 폭력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더욱더 자신을 초라하게 후퇴시키고, 그러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 결국은 술에 져며든 낙오자의 삶을 재촉하는 듯한 심한 배신감마저 느끼게 한다.

세상이 서럽다면 그 속에 묻혀 살지 말라 하였던 성인의 말씀은 현실도피라는 넉 자의 테두리에 갇히고, 그 속에서 나만이라도 정수기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모든 이들이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자기의 물방울을 터뜨려버리거나 이끌려 떠내려가 다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가버리는 게 너무 서럽다. 한번 태어나 한번 죽기 때문에 우리는 한계상황 속에서 발버둥치며 자기의 가면을 벗겨내고자 한다. 남에 의하여 씌워졌던 더러운 옷가지들을 벗어버리고자 나 혼자만이라도 개끗한 알몸으로 스스럼없이 살아보고자 우리는 한밤을 번민하며 고통 속에 이술을 받아먹는다. 하지만 내 자신이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가진 것 없는 빈곤자들, 내세울 것 없는 가난한 자는 스스로를 자기의 벽속에서 감춰버리고자 한다.

 

198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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