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학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
우리가 담배에 기대하는 욕구충족은 많은 양상을 띤다. 한 대의 담배는 우리에게 정복감을 느끼게 한다.
밖으로 내뱉는 언어와는 다르게 담배는 우리의 심장 깊숙이 안으로 빨아들인다. 내면의 세계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어차피 언어가 우리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면 담배는 유일한 심리표현일 수 있다. 우리는 허무하게 낙하하는 잿빛 시체를 감상한다. 우리는 벌겋게 달아오를 카타르시스의 불빛에 한 가닥 희망을 입힌다.
우리는 타아르를 거르는 필터의 황색 여운을 보면서 이 세상의 죄악을 걸러내는 희생자의 구도정신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까맣게 썩어가는 X-Ray의 허파꽈리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배신감을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하얀 입술을 우리의 설육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담배 한 모금에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인생. 어떠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간대에서 담배는 일말의 위안이다. 담배의 참맛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고의 사람이다.
회색의 향연은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같다.
한 모금의 담배로 세상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항변일 뿐이다. 왜냐하면 한 모금의 담배로 인하여 세상사는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위하여 담배는 존재하지 않는다.
1986.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