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열에게
준열.
오래간만이다. 오늘 아침 정식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전방에 가는가 보더구
나. 토요일에 전화 걸겠다고 했다는데 걱정이다. 왜냐하면 6일부터 9일까지 무
악축전이 있고, 9일(土) 아침부터 학교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는지.
지금 생각으론 오후2시경까지 전화 기다리다가 만나서 학교 갈 예정인데 서
울에 몇 시에 도착할까도 의문이고, 혹 그 시간대를 알면 전해주기 바란다.
느닷없이 오월이 와서 조금은 황당하다. 행사도 무척 많을 뿐 아니라, 너희
귀빠진 날이 오월 초반에 왕창 걸려 있어서 할 일이 너무 많다. 아마 2일이 정
식이 생일이고, 5,6일경이 네 생일 같은데 왕창 때려서 모두 축하한다. 형
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특별히 선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중간고사는 잘 치렀는지, 밥은 안 굶고 다니는지, 생활에 윤활유를 잘 뿌
리고 다니는지, 부모님께 걱정은 안 끼쳐 드리는지 너희들을 두고 훌쩍 떠나온
내 자신이 밉다.
5월 1일은 세계 노동자의 날(May Day)이었다. 어떤 의미를 두고 보냈는지
궁금하구나. 우리에겐 잊혀지기 쉬운 날인 것 같다.
내일(5.5)은 너희들 잔칫날이고, 5월 8일은 나의 잔칫날인 것 같다. 즐거운
일도 많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슬픔이 이 땅에선 또 들려오고 있다.
지난번에 Cafe에 가서 Why Wony ?를 신청해서 들었다. 근심 많은 세상
에 태어났으므로, 왜 걱정하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현실도피 이기보다는 현실타파이길 우리 모두가 느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방범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우리는 하나요, 당신과 나도
하나, 하나 됨이 무언지 막연하긴 하지만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
두의 바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요일 아침 학교에 등교해서 처음 하는 것이 바로 이 편지 쓰는 것이다. 축제기간 중 재미있게 보내면서 너희들 생각 많이 하마. 그리고 상계동, 양평동
철거민에 대한 사랑도 가꾸어 가야겠다.
우리 모임에서 민속장터를 한다. 막걸리 동동주, 빈대떡 파전 등을 최대한
비싸게 팔 예정이다. 너희들도 초청하고 싶으나 의사 자리 따내야 할 너희들에
게 함부로 시간 내라 마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나온 이익금은 명동성당
에서 천막치고 사는 철거민들을 위해 사용할련다.
그럼 또 수업도 있고 해서 간단하나마 글을 줄이련다. 정식이 서울 도착시간
알면 연락해 주기 바란다. 전화는 아침 7시 반경, 편지는 금요일 오후 도착할
수 있도록.
안녕.
생일 축하한다. 네 어머님은 너를 낳고도 미역국을 드셨단다.
1987.5.4
신촌에서 한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