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월 5일 새벽 2시 5분, 27일 간의 투병 끝에 이한열이 숨을 거두었다.
6월 29일 군사정권의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직선제를 받아들인다고 항복한 후였다.
경찰은 압수수색검증영장을 가지고 그의 시신마저 탈취하려 하였다.
거기에는 "압수할 물건 : 이한열의 사체 1구"라고 써 있었다.
학생과 당직 의사 등이 경찰에 맞서 그를 보호하였다.
연세대 학생들은 비상연락망을 통해 소식을 전했고
날이 밝기 전 학생과 시민들이 세브란스로 몰려들었다.
경찰은 겹겹이 둘러싸 출입을 통제하였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회관에 걸었던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을 도서관으로 옮기고
학생회관에는 검은색 만장을 걸었다.
그의 장례일까지 매일 그의 영정을 들고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정문 앞 세브란스를 거쳐 민주광장으로 돌아오는
애도 행진을 하였다.
조문 행렬에는 일반 시민도 어린 아이도 있었다.
6.29 선언 이후 전국의 교도소에서 출소한 양심수들도 연세대학교에 모여 이한열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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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에서 한열의 영정을 든 사람들 가슴에 근조 리본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