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9일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지자
그날부터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그의 병상을 지키기 시작했다.
혹시 그가 사망하면 경찰들이 그의 시신을 탈취하여 화장하고
사망 원인을 모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병실 앞 뿐 아니라 중환자 병동, 세브란스 병원과 연세대학교의 모든 문을 지켰다.
병실에서 각 문으로 가는 길목에도 소리를 질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거리에
대여섯 명씩 조를 짜 그를 지켰다.
세브란스 병원 정문 앞에 학생들이 모여 있다.
평균 하루 500여 명이 6월 9일부터 장례식을 치른 7월 9일까지
꼬박 한 달간 24시간 그의 병실을 지켰다.
혹시 그를 잃게 된다면, 그의 목숨을 잃었는데 그의 시신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밤이면 신문지 한 장을 깔고 앉아 그를 지켰다.
병동 바깥에서도 밤낮없이 경비를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