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말씀
한열의 2주기가 다가오는군요. 한열의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며 가슴이 찢어지는
군요. 한열의 어머니에게 내 마음 전해주시오. 목이 터지라고 초혼하는 심정으로 열사들의
이름을 불러보았건만 내 목에서는 피가 터져나오지 않더군요.
7월 9일 연세대에서 신촌까지를 꽉 메운 시민들 속에서 나는 민족통일을 볼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고, 얼싸안을 수 있었고, 숨쉴 수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한열이었거든요. 한열
이로 하나였더근요. 한열이는 무엇이었어요? 한열이는 겨레였어요. 민주요 통일이었어요, 자
유요 평등이었어요. 정의요 사랑이었어요. 평화였어요. 죽음을 집어삼키고 벌떡 일어서는 생
명이었어요. 한열의 어머니의 가슴 찢어지는 울음 속에서 열리는 민족의 내일이었어요. 분단
의 빗장 내려지고 통일의 문 삐걱 열리는 소리였어요. 눈물없이는 들어 넘길 수 없는 소리
였어요.
우리는 모두 이한열이로 하나였어요. 교수도 학생도, 노동자도 농부도, 장사꾼도 가정주부
도, 남자도 여자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모두모두 이한열이로 넘쳐 가슴 울먹이구 있었어요.
아무도 내 새끼 내 학교 내 직장 내 행복 내 성공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우리는 모
두 한열이었어요. 사람만이 아니었어요. 하늘도 땅도, 산도 내도, 소나무도 드릅나무도, 새도
토끼도 나비도 모두 한열이었어요. 한열의 목소리였어요.
누가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했떤가요? 우리의 몸짓으로 우리의 숨결로 맥박으로 걸음거리
로 몸으로 울려 퍼지는건 죽은 한열의 귀청 째지는 숨소리였어요. 모든 사람 가슴터지게 발
바닥 울리는 한열의 노래였어요. 산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어야 해요. 산자의 말은 제 속이나
차리는 간사한 속임수 거짓말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죽은자의 목소리, 한열의 목소리만이 진
실이거든요.
한열의 어머니에게 나의 이 마음 전해주시오. 나는 죽은자의 목소리, 한열의 잠재울 수 없
는 목소리에 떠밀려 평양에 갔다왔다구요.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서 한 이야기는 다 한열이
었어요. 이제 법정에 서서 천하를 향해서 통일을 논하는 나의 목소리, 그것도 한열일 거라구
요. 죽은자의 목소리를 어느 산자가 막을 것이오, 한열이는 통일이야요. 한열이를, 통일을 아
무도 못 막아요. 하느님도 못 막아요.
한열이 만세! 통일 만세!
한열의 어머니에게 승리를 안겨줍시다.
1989. 6.2
430-083
안양시 호계3동 458 안양교도소에서
문 익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