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이 쓰러진 6월 9일, 학생들은 바로 경비대를 조직하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밤을 세워 이한열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의료진은 부종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상태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처음 며칠은 학생회, 서클 등을 통해 학생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경비를 설수 있겠지만, 이것이 장기화할 경우 이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총학생회에서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고 날짜를 정해 돌아가면서 병동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때부터 평소 운동권과는 거리를 두던 학생들까지 나서서 세브란스로 모여들었습니다. 하루 평균 500명의 학생들이 배치되었고 많을 때는 25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나 대신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그는 모두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각 단과대학별로 책임자 1인을 선정하여 총학생회 복지부장과 같이 경비를 합니다. 각 단대 및 단대연합, 서클연합회에서는 할당받은 시간에 25인 이상을 동원하여 신경외과 중환자실 양 옆에 5인(합10인), 중환자실 밖에 10인, 부모님 계신 곳에 5인을 배치하여 경비합니다.
특히 부모님 계신 곳은 만화사랑에서 책임지고 담당하기로 하였으니 만화사랑 책임자의 통제에 따라 경비하여 주십시요.
최루탄 정권은 짦아도 한열이의 민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하리라!
한열아! 너는 결코 죽을 수 없다!
너를 지켜주는 우리들이 있는 한, 4천만 민중의 민주의 물결이 있는 한 우리의 한열이는 죽지 않는다.
-분단조국 6월 30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