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지지가 있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안녕하세요.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이한입니다.”
이제 입에 밴 자기 소개입니다.
사실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소개하면서도 여전히 활동가가 대체 무엇인지, 지금 이대로 나를 활동가라고 소개해도 괜찮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한열 펠로우십으로 지원까지 받아서 이제 한 해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남겨보는 작은 고백입니다.
사회문제에 대단히 관심 많은 청년은 아니었습니다.
가끔 뉴스를 보면서 화를 내고 혀를 찼지만, 그렇다고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업으로 삼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 활동가를 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떠나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어떤 사회문제가 불거져 사회적인 관심이 쏠릴 때도 되도록 먼발치에서 후원을 하거나 집회에 한 번 참여해서 응원을 하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직업을 구할 때 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의 돈으로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 해외봉사를 다녀왔고 미취업 시기의 불안을 다스리려 창업 캠퍼스에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무엇인가에 빠져들기 보다는 잿밥을 노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혁신 활동가 양성과정’을 통해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서울청정넷)라는 곳에서 첫 직업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버넌스에 참여하여 청년의 현실을 바꾸겠다!’는 포부보다는 그 당시 제가 지원할 수 있는 곳들 중에서 제일 돈을 많이 주는 곳이었다는게 지원 이유 중 7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서울시 생활임금은 그만큼 매력적인 제도였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선배, 동료들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생활임금이라지만 (그래봤자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에) 어떻게 저렇게 일하지? 싶은 순간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일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자주 치기어린 질문을 했고 하소연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약 2년 여의 계약기간 동안 많이 보고 배웠고 저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제일 많이 아쉬워하셨습니다. 당시 서울청정넷은 한 국면을 지나 서울시로 진입되어가는 상황이었고 이대로라면 기간제 공무원으로 일하게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 규모도 훨씬 커져서 의미와 잿밥 모두 더할 나위 없어 안 할 이유가 없어보였습니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도 스스로의 머리를 내려쳐야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비슷한 결정을 할 것 같습니다. 대단히 철학적이거나 문제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혹자가 보면 ‘MZ스러운’ 이유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저는 쉬고 싶었습니다. 이대로는 뭐 하나가 고장나도 단단히 고장나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지난 활동을 톺아보며 빈둥거리고 불안해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되게 진지해보지만 사실 하나도 진지하지 않은 자세로 그 시기를 보냈고 역시 대단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일단 눈앞에 닥친 생계가 벅차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전까지 대강 하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에 집중하는 시기를 보냈고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강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인건비가 나온다는 지원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활동을 요약하면 일단은 살아있어 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주변에는 숱하게 번아웃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과 맞서다 다치고 지친 동료들이 떠나는 경우가 너무 많았고, 보다 잿밥에 관심 많은 저에게 대단한 이념이나 가치보다는 이런 이들과 함께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공간과 동료와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매번 자신의 시간과 돈을 헐어서 카페를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혼자 막막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한열 기념관 1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주변 활동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간 자신을 괴롭힌 일을 털어놓으며 웃고 마감에 쫓겨 머리를 뜯는 친구에게 커피를 사주며 위로합니다. 동료가 있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받은 지지가 다음을 기약하는 지속가능성이 됐습니다. 그 동안 세상이 더 나아졌다는 말은 못해도 덕분에 주변 세상만큼은 더 지속될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도, 이런 활동가도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게해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조금씩 계속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이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