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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과 6월항쟁-심고은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0-02-07 00:00:00 조회 : 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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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가 살다가 간 1980년대는 격정의 시대였습니다. 1980년에는 당시 군인이었던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에 항거하던 광주시민 4천여 명을 학살하고 대통령으로 집권하였습니다. 이후 각계 민주진영이 군부독재에 저항했으며 그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당시 대부분 대학생이었습니다. 이한열 열사는 이때 활동했던 학생 민주화운동가입니다.
이때 대통령 선거는 간접선거제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고, 다음 대통령으로 전두환의 동기였던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던 작업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했고, 그에 대한 억압은 매우 심해, 경찰과 안기부는 학생들과 운동가들을 데리고 가 잔인한 고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탄압의 강화는 정권의 위기의식도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 5공화국의 말기쯤인 1987년 초의 겨울, 서울대 학생이었던 박종철의 하숙집에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가 경찰에 쫓겨 숨어 들어오게 되고 다음날 그 선배가 떠나고 난 뒤 경찰은 그의 하숙집에 쳐들어와 박종철 열사를 연행해 갑니다. 결국 열사는 혹독한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고, 그런 사실을 군사정권은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4월 13일 독재정권은 호헌 조처를 발표해 체육관 선거를 통해 독재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혀 많은 사람들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좌절시키려 했습니다. 이 사건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6.10 항쟁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이한열 열사는 고문살인은폐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가했다가 시위 중에 최루탄을 머리에 직격으로 맞았습니다. 그는 결국 병원으로 실려가 사경을 헤매다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에 사람들은 더욱 격노했고, 항쟁은 거세게 이어졌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일은 지금도 부모님 세대에서는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무력 진압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전두환은 군대 투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항이 워낙 거세 군대를 투입한다 해도 진압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6월 26일에 있었던 평화대행진의 날에는 전국에서 180여만 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한 항의의 표시로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종을 쳐댔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자 마침내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시국수습을 위한 8개항"을 선언하였습니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저항 운동이 결국 독재 정권을 무릎 꿇린 것입니다. 이한열 열사는 연세대에 다니던 똑똑하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학생으로 나라를 바꾸기 위해 시위에 참가했다가 무참히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가 목숨을 잃은 1987년도는 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알고 있기만 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해도, 지금의 저는 경험하지 못한 그 당시의 일을, 전부 알 수 없고, 완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힘들 것입니다. 그저 그 격렬했던 당시의 투쟁과 열기를, 전해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세대였던, 당시 그 세대의 의지와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살고 있는 민주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모두가 몸을 사리고 권력이 무서워서 부정을 무시하고 숨어있었다면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그때와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릅니다.
이한열 열사는 당시 저와 같은 대학생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으로써 감히 그 분과 비교하려고 하면, 전혀 한 것이 없어 부끄럽기만 합니다. 지금, 그때의 그와 같은 한 사람의 학생으로서, 저 또한 그를 본받아 자기 안위만을 찾지 않고 옳은 것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꼭 외치고 투쟁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바른 일을 찾아서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이 사회에서는 언제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