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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유고 글

나를 짓누르는 것들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11:52:05 조회 : 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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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짓누르는 것들

 

내 자신과 나를 위하여, 이제 차분히 나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흥청거리는, 걷잡을 수 없는 나의 머리를 차분히 식히고 본 궤도에 올려놓아야 할 때이다. 이제 스스로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너무 늦은 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 순간에, 지금이라도 생각해야 하는 이 절박한 순간에 나의 이 머리로 나에 따른 모든 현재의 일과 불확실한 미래의 나의 존재에 대해서 잠시 정돈할, 확고한 어떤 가치관을 세워야 할 때이다. 어쩐지 본론을 꺼내놓기가 무서운 까닭은 무엇인가? 차분히, 냉정하게 오늘 어느 땐가 갑자기 나의 얼굴을 뒤집어 보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일을 회고해 보았다. 역시 나는 이 현재로써밖에 유지될 수 없는 놈일까? 여전히 나를 묶어놓는 이기심과 의타심과 자기주체적 자각의 분실이라는 이 튼튼한 밧줄을 풀기에는 너무 미약한 나의 존재임을 확인해 본다.

나의 현 위치로써는 도저히 남의 일을 생각한다거나 주위의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쓸 수 없는, 그러한 세상에는 나 혼자밖에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박한 위치임을 느껴본다. 어떤 기계 공정의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때, 다시 말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과 내가 바라는 목표치에 접근하지 못한 이 현실, 실로 나의 이 한탄과 한숨소리가 나의 발 밑의 땅을 없애버릴 것만 같다. 어떠한 미사여구로써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싶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심정을 폭로할 수 있는 용기가 간절할 때이다.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속이고 헛 얼굴로써 나의 마음과 나의 동료를 기만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우선 그 위대하게만 보이고 그 자리만을 갖고 싶은, 한번 해 보고 싶은 나의 욕망을 꺾고 그 자리는 밀쳐두는 게 나일 것이다. 멀리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간은 무엇이 완성되어지고 있는 순간이 아니다. 한참 자라는 어린나무처럼 연약한 줄기에 불과하다. 이 연약한 줄기에 어떠한 천으로써 그 부분을 감싸놓는다면 더 큰 줄기와 잎사귀와 열매는 맺을 수 없을 것 같다. 아직은 내 능력이 그만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한편으로 내 자신, 그러한 천을 둘러쓰게 될 그 어느 누군가에 대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 따름이다. 물론 이 천의 사용은 쓰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니, 그 누군가는 잘할 것이다. 그리고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자기충실로써 더 큰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나의 신분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밖에는 생각할 수 없겠지만, 둘 다를 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 1년이 남았다. 지난 1년은 잠시 생각을 미뤄두자. 그 고통을 웃음으로써 갚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주위의 언행에 관여하지 않고 내 자신만이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강인한 주체적 정신을 길러야 한다.

이제 정서적 사색과, 다시 되돌아가고픈 과거와, 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면서 무엇을 하기보다는 강한 나의 힘을 길러야 한다. 당분간 그러한 유희와 낭만은 잊기로 하자. 좀 더 냉철하고 단단한 밧줄로 나의 두 눈을 묶어야 할 때이다. 차분히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때이다. 오늘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이 현실의 생활에 만족하고 가야 되는 그러한 힘이 필요하다. 너무나 절실하다. 11월 달부터는 정말 분주하게 공부해야겠다. 넉 달간은 우선 TS의 초석을 다지고, 아무튼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죽자사자 해야 할 일이다.

이번 가을도 무던히 짜증스러웠던 계절이었다. 가을 남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나간 세월이 안타까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전보다 못한 존재, 전보다 부패된 존재를, 점점 시들어져가는 보잘것없는 이 존재를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분명히 나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변화이자 문제가 된다. 이제 그만 부모님도 나를 포기해 주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그만 이상이나 꿈이나 모든 걸 포기하고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학교 중퇴하고 막노동꾼으로 시작해서 무식한 사장이 되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열나게 해 보았다. 한마디로 이 현실의 다른 도피처를 찾고자 하는 심정이었다.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이 된다면 누가 이런 생각을 해보겠는가?

, 이런 생활에 실증을 느껴버린 것이다. 일종의 히스테리 같은 병적증세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제가 못되고 자꾸 나약해지고, 주위의 압박에 눌려 곧 터져버릴 것만 같다. 요즘은 어디 가서 머리를 처박고 폭포수라도 맞고, 머리도 깎고 정신개조를 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심오한 대자연의 깊은 품속에서 속세의 모든 유혹과 번민을 달관하고 신선의 경지에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자꾸 머리가 아프고 이제 집에 가서는 학습이란 단어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대로 앉아 있어도 자연히 엎드려지고, 이불 깊숙이 숨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해야겠다. 학교의 자율학습도 버리고, 실장인가 하는 나부랭이도 깨끗이 떨어버리고, 나의 일체의 관념도 떨어버리고 학습의 삼매경으로 찾아들고 싶은 심정이다. 새로운 환경을 찾아서, 신선한 새로운 분위기로 다시 생활하는 역할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참신한 나의 정신세계를 만들고 싶다. 이제까지의 모든 넋두리를 벗어버리고 이 위에 모든 사심한 마음을 쏟아버리고 새로운 나의 인생을 모색해야겠다.

누군가 뒤에서 비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참아라, 참아라. 사람의 신념이 이제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기필코 보여줘야 한다. 남이 아닌 바로 내가. 그리고 내적 자기 주체성을 기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열심히 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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