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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유고 글

방학을 보내고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3-07-25 00:00:00 조회 : 2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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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보내고

 

나는 드디어 펜을 들었다. 나의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는 방학 동안의 생활을 내 머리 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가 매우 두려웠다. 지금 시각 11시 50분. 지금 막 방학이 끝나려고 하고 있다. 나는 과연 이번 여름방학을 보람 있게 지냈는가? 내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이번 30일 동안의 방학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3박 4일로 갔다 온 여명회 하기수련회. 나에게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 해본 것처럼 잘해냈다. 선배들과의 친선, 동료들과의 펠로우쉽 등 집에서 할 수 없었던 일, 아니 안 해본 일을 하며 등산 등 모든 것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었다. 월출산, 두륜산을 단숨에 정복했던 일, 해수욕장에서 쥐가 났던 일, 그리고 선배들이 권하는 술잔에 호기심에서 마셔본 술, 난생 처음 마셔보는 알코올은 예외로 나에게는 강했다. 선의의 탈선을 주창하는 선배 형님들. 나도 그 속에서 3박 4일 동안 멋진 경험을 해보았다. 선배들이 시키는 헌팅을 한 명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월출산 기슭에서 가졌던 반성회. 실로 뜻깊은 3박 4일을 정리하는 멋진 시간이었다.

나의 순서 때 나는 여명회의 끈기를 지적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복받치는 어떠한 격한 감정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재인이형으로부터 받은 말에 약간의 충격을 느끼며 나올 때 손목을 잡으며 나의 참뜻을 말하던 때 재인이형은 나에게 어떠한 감명을 주었다. 그리고 꼬박 3박 4일 동안 우리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대해주었던 종상이형의 따뜻한 애정 또한 잊을 수 없다.공용 터미날에서의 아쉬운 헤어짐. 그보다 월출산 가게에서 회식 대 마신 막걸리 네 잔은 정말 우리 민족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탈로날까 두려워 은단껌을 씹었다.

그러나 여기서 밝혀둘 것은 그 후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것. 우리들의 선의의 탈선은 수련회에서 끝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2, 3일 후 나는 무등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준열, 철, 그리고 나 셋이서 날마다 왔다갔다 분주한 생활을 보냈다.오전에 공부하고 오후에는 놀고, 오후에는 제과점에 가고 시내를 두루 누볐다. 딱 한번 태평극장에 들어갔다. 거액 1,000원을 주고. 그리고 나는 거기서 느낀 게 있다. 이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어느 선인의 말씀에 친구 셋이 걸어가면 반드시 거기에는 스승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하찮은 것, 보잘것없는 것도 결국 우리에게 교훈을 주며 훌륭한 스승이 된다는 것을. 영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광주공원에도 갔다. 거기서 노후를 쓸쓸히 보내시는 할아버님, 할머님 등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효도라는 것을…….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국민학교 동창(여자동창)이 나에게 접근해 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언니와 오빠를 앞세우고. 그것은 반위협적이었고 강제였다. 나는 만날 것을 수락하고 며칠 뒤에 만났다. 매우 뚱뚱하고 멋없는 얼굴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창평여고 다닌다는 말에 더욱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거기서 한 시간을 버틴 후 나와 버렸다.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그 뒤 친구들은 장난삼아 그 악몽을 말하곤 했다. 그것이 나의 여자와의 첫 대면이었다.

그 뒤 계속 도서관에 다니며 수영장도 갔다. 또한 이번 방학의 가장 큰 수확은, 아니 보람은 진실한 친구의 사귐이었다. 常幼정철,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줬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발견한 게 있다면 그에게 아빠가 안계시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랍시고 반년 동안 사귀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며 순간 차 탈 기분을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준열이와 함께 적막 속에 먼 길을 재촉했다.

한편 티없이 자란 철을 보며 대견스러웠으며, 그렇게 꿋꿋이 생활하는 철이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며칠 후 철이와 무등산에 놀러갔다. 아니 등산을 갔다. 거기서 철이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더욱더 친구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었다.그리고 기념사진을 몇 장 찰칵했다. 나는 자주 철이집에 갔다. 그리고 팝송을 들으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 마음을 통하게 되었다.

방학 동안의 또한 큰 수확이라 하면 『보람있는 삶을 위하여』라는 책을 철로부터 빌려 보았다. 거기에는 19인의 철학자가 실려 있었다. 나는 거기서 철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으며, 위대한 사상가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며 자기 스스로 훌륭한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탄생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로 유익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는 고교 기본영어를 보았다. 방학 동안에 공부한 것은 그 것 뿐이라고 생각난다. 그리고 수학은 떠들어보지도 않았다.그 덕분에 방학숙제도 남의 것을 베껴 간신히 했지만.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보다도 더욱 소중한 것을 보고 배웠으니 말이다. 너무 쓸 것이 많다. 무엇부터 써야할 지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기특한 일도 한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께 편지를 쓴 것이다. 그것이 반강제적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한 통은 수련회 갔다 와서, 또 한 통은 1주일 전에 말이다. 또 친구 우석이에게도 했다. 너무 순진한 그리고 착한 우석이에게도 말이다. 비록 답장은 안 왔지만,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 쓴 걸로서 만족하니까 말이다.

아차, 가장 기억에 남는 생생한 일들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성교제였다. 두 건 모두 뜻밖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나 자신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한창 쇼펜하우어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서관에 안 나가고 쉬는 날 12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시내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나는 멋모르고 한 장을 뒷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약속장소로 나갔다. 거기서 사건은 터진 것이다. 미팅을 하자는 선배들의 말.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벌써 거절할 수 없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나이를 속인 채 누나뻘인 여자와 미팅을 했다. 나는 거기서 공동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가지 얻은 게 있다. 그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올바르게 건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상대방의 말. 나는 거기서 얻은 게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 건은 끝났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건은 바로 그 다음날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일어났다. 철이가 2시까지 자기집에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갔다.그런데 대뜸 자기 매부의 딸을 소개시켜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벌써 약속을 해놨다나. 그래서 다시 내 신조를 깨뜨린 채 그 집을 갔다. 그리고 내 소개를 하는데 철이가 나를 너무 높이 올려줘서 내 자신 실로 언제 추락할까봐 매우 겁이 났다. 그애는 중 2년, 나이는 16살. 나는 마침 여동생이 생겼구나 하고 매우 기뻤다. 그리고 거기서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그 집을 나왔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사건도 끝이 났다. 실로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이제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지금 시각 0시 45분. 벌써 시계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이제는 방학이 끝난 것이다. 나에게 매우 보람 있었던 방학이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매우 보람 있는 방학이었다고.

지금 내가 쓴 이 글은 누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것은 뭐 나를 내세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진실한 심정을 누구에겐가 보여주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고이 간직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과거의 추억이요, 평생 잊히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방학은 끝났다. 나는 내 마음의 창을 다시 새로이 열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 1학년 2학기의 첫 장이 펼쳐졌다. 다시 새로운 각오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1982.8.23. 0시 45분

내 마음의 한열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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