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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탈상(1987.10.13)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0-07-10 14:24:36 조회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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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이한열을 사망에 이르게한 

서대문경찰서장, 전투경찰 중대장, 소대장, 전경 1인을 살인죄로 고소하였다. 

그러나 전경 1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기각되었다. 

이것에 대해 항의하러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법원(서초동으로 이사하기 전, 현 서울시 의회 별관 건물) 앞에 갔다가

총학생회장 우상호가 연행된다. 

 

기각에 대해 항의한 것으로 구속할 수 없었던 검찰은 

그가 5월에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대통령이 광주에서 시민을 많이 죽였다고 발언한 내용을 문제 삼아

국가원수 모독죄로 구속한다. 

우상호는 유죄 판결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수감된다.   

 

우상호는 그해 12월 16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풀려난다.  

 

1987년 10월 13일 100일 탈상, 도서관 앞 

 

헌향하는 총학생회 총무부장 정성원, 총부학생회장 최병규, 이한열 피격장면을 찍은 정태원

 

사회보는 장숙희,  앞에 오인환

 

서 있는 김거성, 앉은 김대중 문익환,  사회보는 정성원

 

김거성, 강성구, 오충일, 마대복, 우현, 어머니, 정성원, 김대중, 문익환, 김병규

 

탈상을 마치고 교문 앞으로 행진

가로막 중앙에 어머님이 계시다.

 

어머님을 향해서도 최루탄은 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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