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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이야기

고등학교 때 끼적거렸던 낙서에서부터 교련복까지 평범했던 청년 이한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최루탄 추방 국민결의의 날' 안내 유인물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0-06-26 10:55:15 조회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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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국민대회 하루 전날인 1987년 6월9일 오후 5시 이한열은 ‘범연세인 총궐기대회’에 참가, 교문 앞까지 진출했습니다. 건너편 길에서 전경들이 SY44탄을 무차별 대량 난사하자 학생들은 교문 안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우박같이 쏟아지는 최루탄 중 직격탄 하나가 이한열의 머리를 때리는 순간, 그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간 그는 의식불명의 뇌사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최루탄은 단순히 시위를 막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였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는 문동환 목사·한승헌 변호사·성내운 교수 등을 주축으로 ‘최루탄 희생자 대책위원회’를 구성, 최루탄의 폐해를 홍보하는 공청회를 열고 지역별로 최루탄 추방대회를 갖기로 결정합니다.

 

 

최루탄추방대회는 이한열을 비롯한 숱한 피해자들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대회였습니다. 민가협 등 여성단체는 최루탄 제조회사인 삼양화학이 소득세 순위 4위에 이를 만큼 고소득을 올리고 있음을 추적해 폭로하고 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했습니다. 6월18일, 명동성당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열린 항쟁의 불씨는 최루탄추방대회를 타고 부산·대구·광주 등 전국으로 번져나갔고 이는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의 날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9일,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게 됩니다. 이 유인물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 배포되었던 것입니다. 군부정권에 의해 언론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이런 전단지를 만들어 소식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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